연구

[주해연구] [3] 『부시리스』와 아홉 개의 편지(김헌)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08.04 13:31 조회 1,796
  이소크라테스의 부시리스370년대 플라톤의 국가파이드로스사이에 발표된 시범 연설문이다. 이와 같은 저술 시기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철학적 상호작용의 일면을 보여준다. ‘플라톤의 국가를 보고 이소크라테스가 부시리스로 반응하였고, 그에 대해 플라톤은 파이드로스로 대응하였다는 것이다. 3단계 주해는 이 점을 집중 조명할 것이다. 당시 플라톤과 이소크라테스는 아테네 교육의 주도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올바른 지식’(epistêmê)이 진정한 지혜’(sophia)라고 주장하며, 그것을 추구하며 획득하려는 지적 노력이 철학이라는 것이 플라톤의 입장이었던 반면, ‘에피스테메란 변화무쌍하고 개별적인 정치적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한 것이 이소크라테스였다. 그는 진정한 지혜’(sophia)란 가변적이며 구체적인 정치적 현실에서 시의적절한(<-kairos) ‘의견’(doxa)를 구성하여 ’(logos)로 표현하여 사람들과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그것을 추구하며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철학’(philosophia)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개념 논쟁은 서양철학사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사건인데, 동서양 학계 전반에 이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다. 본 연구자는 3단계 주해를 통해 이 점을 분명하게 부각시키려고 한다. 두 사람은 철학은 물론 정치적인 관점에서도 대립적이었다. 플라톤이 국가의 확대를 경계한 것에 반해, 이소크라테스는 동방의 페르시아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그리스 민족의 단결과 제국의 건설에 정치적 희망을 걸고 있었다.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와 그의 어린 아들 알렉산드로스를 비롯 당대 그리스 주요 정치 지도자들에게 보낸 이소크라테스의 아홉 개의 편지다. 본 연구자는 부시리스와 함께 아홉 편의 편지를 주해하면서 이소크라테스의 정치적인 이념을 플라톤의 그것과 비교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