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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원: ‘돈의 왕국’서 검열 걸리기 좋은 노래 부른 ‘바보’ (한겨레신문-20110722)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07.15 13:59 조회 1,078

문화

문화일반

‘돈의 왕국’서 검열 걸리기 좋은 노래 부른 ‘바보’

 
등록 : 2011.07.22 20:26 수정 : 2011.07.22 20:26

 

시인이라기보다는 교사로 보이는 호라티우스. 안톤 폰 베르너(1843~1915)가 그린 작품 부분.
 

고전 오디세이 36 돈의 시대에 덕을 예찬한 시인 호라티우스

제국 통치비용이 필요한 아우구스투스에게 매관매직은 이른바 ‘꿩먹고 알먹는’ 일이었다. 정치와 경제가 대놓고 짝짓기하는 게 역사에 포착된 순간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때에 호라티우스는 돈을 욕하는 노래로 먹고살았다
“카르페 디엠 Carpe diem(오늘을 즐겨라)!”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기원전 65~8)의 말이다. 그가 살았던 로마의 풍경은 대체로 이랬다.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비단으로 유행을 선도하는 여인들의 짧은 옷들, 매혹적인 향수와 명품 비단 망토를 두르고 여인들의 짧은 옷을 바라보는 사내들의 시선들, 오만한 유력 인사들의 가마꾼들의 부지런한 발들, 까치발을 하며 검투사 경기의 광고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노예들의 눈동자들, 청동 나팔과 트럼펫을 불면서 행진하는 성대한 장례식 행렬들, … 나름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기둥들, 머나먼 아라비아와 풍요로운 인디아에서 수입해 온 진주들, 세계 각지에서 가져온 희귀하고 진귀한 보석들, 그리고 생존을 위해서 이곳저곳으로 분주히 뛰어다니는 사람들. (해밀턴의 <고대 로마인의 생각과 힘> 중에서. 역자의 허락 없이 약간 고쳤다. 이에 대한 넓은 이해를 구한다. )
몇 단어만 고치면 딱 서울의 현재 모습이다. 서울이 번잡하고 복잡하듯이, 로마도 못지않게 난잡했고 아수라장 판이었다. 서울이 더 시끄러운 곳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기원전 1세기의 로마는 그런 곳이었다. 음모와 권력, 사치와 향락이 판을 치는 곳, 무엇보다도 “돈이 여왕(Regina Pecunia!)”이었던 곳이었다. 호라티우스가 이 주장의 주인이다.
오 시민들이여, 돈이 최고요, 최상이요
십 원짜리 동전 뒤에서 궁실거리는 것이 덕이요
(<서간> 제1권 중)

인용은, 돈이면 안 되는 일도 없고 못하는 일도 없었던 제국 로마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로마가 이런 지경에 처하게 된 사연인즉, 이렇다. 그러니까, 돈이 만물의 여왕으로 등극한 시기는 옥타비아누스가 황제로 등극하는 때와 일치한다. 사실, 아우구스투스만큼 영리한 통치자도 없을 것이다. 우선, 그는 로마 제국의 정부 조직과 군대 구성을 하면서 구성원들의 신분을 묻지 않는 정책을 편다. 능력과 실력이 있으면, 여기에 충성심만 있으면 누구든 등용하겠다는 것이 그의 통치 전략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능력과 실력은 사실 구실에 불과했다. 공화국 시대의 능력과 실력은 설득 능력과 연설의 힘이었다. 설득하는 자가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국 시대가 되면, 설득은 위험한 것이고 연설은 제거되어야 할 무엇이었다. 참고로, 로마에는 동양의 과거 시험과 같은 관리 임용 제도가 없었다. 공개적으로 관리를 임용하는 방식이 없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충성심이 곧 능력이었다. 전시에는 용맹함이 능력이지만, 평시에는 아부가 곧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부도 실질적인 증명을 요구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돈이었다. 사실, 이는 아우구스투스의 구미에도 맞는 일이었다. 제국 통치에 요청되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런 세력을 찾고 있던 아우구스투스에게 따라서 매관매직은 소위 “꿩 먹고 알도 먹는” 일이었다. 그런데 매관매직은 다른 곳에서 더 큰 정치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통치에 가장 골칫거리였던 전통적인 귀족들을 제거하는 혹은 길들이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사회 정치 체계가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불안정한 법이다. 요컨대 격동의 혼란기에 힘을 발휘하는 것은 윤리나 도덕이 아니다. 대개는 능력이 우선한다. 그런데 그 능력이 실은 돈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는 로마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돈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니까. 관직은 기본이고, 명예는 보너스며, 심지어는 본받아야 할 인물로 떠받들어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호라티우스의 말이다.
덕, 명예, 명성, 그것들이 인간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든, 신에 속하는 것이든,
만사가 부(富)의 화려함에 무릎 꿇는다네. 부를 쌓은 이가 진정으로
명예롭고, 용감하며, 정의로우며,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네. 설령 왕이라 할지라도
돈에는 어쩔 수 없네.
(<풍자> 제2권 중)
돈의 위력이 제대로 드러난다. 혼란의 시대가 찾아오자, 돈만 가졌던 자들이 그동안 자신들이 가지고 싶었지만 가지지 못했던 모든 것을 손에 넣고 있는 현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다시, 아우구스투스가 황제로 등극하는 순간으로 돌아가자. 그의 등장을 누구보다도 반긴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다름아닌 무역과 거래를 통해서 큰돈을 번 기사 신분의 “비즈니스맨”들이었다. 비록 돈은 많았지만, 전통적인 귀족들에게는 교양 없고 소위 “근본도 없는 것들”이라는 무시와 천대를 받아야 했던 신흥 부자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등장은 당연히 환영할 일이었다. 신분 상승의 기회와 안정적인 사업 기반을 확보할 수 있는 강력한 통치 리더십을 마련해 준 이가 아우구스투스였기에. 반면, 그들을 그토록 무시했던, 그러나 공화정을 지지했던 귀족들은 정치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와 경제가 이제 대놓고 짝짓기를 하는 모습이 역사의 무대에 포착되는 순간이다. 덕분에 돈도 여왕으로 등극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돈이 여왕 노릇을 하는 시대에 활동한 호라티우스! 하지만 그는 “돈이 만물의 척도”가 아니라 “덕이 만물의 척도”라고 노래했다. 물론, 덕을 호소하는 그의 노래에 몇 사람이나 귀를 기울였을지는 잘 모르겠다. 거의 없었을 것이다. 사실 지금 읽어도 별로 재미없다. 시험삼아 한 소절 들어보자.
진정 행복한 이는 잡사(雜事)에 매심(買心)하지 않은 저 사람이/ 옛날의 우리 어른들처럼 살고 있는 저 사람이/ 갚아야 할 이자에 대한 근심의 멍에를 벗어던지고서/ 자신의 키운 소로 조상이 물려주신 땅을 쟁기질하는 저 사람이/ 힘겨운 노질을 해야 하는 군인이 될 생각도 없고/ 성난 바다를 두려워할 걱정도 없으며/ 번잡한 시장에서 헤맬 일도 없고/ 오만한 권력자의 거만한 문턱에 굽실거릴 일이 없는 저 사람이. (호라티우스 <장단가> 2번)
       
 
나름 교훈적이지만, 재미는 글쎄다. 어쨌든, 호라티우스는 돈의 시대에 돈을 욕하는 노래로 먹고살았다. 그래도 나름 그의 작품을 돈 주고 사 읽는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었기에. 여기에는 그의 성품도 한몫 거들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었다. 여느 모임에서 불러주지도 않았는데, 그가 문을 열고 뚜벅뚜벅 들어오면, 그 모습에 반가워 모든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말수는 적었다. 하지만 자리를 조용히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이 느껴지는 사내였다. 굳이 나서려고, 괜히 나대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느새 모임의 중심에 가 있는 인물이었다. 어설프게 세상을 비판하려 하지도 않았고, 당장 세상이 무너질 듯 열변을 토하는 친구를 그렇다고 나무라지도 않았다. 조용히 미소를 머금고 들어주는 친구였다. 알프스의 겨울 눈이 녹아서 흘러넘치는 포 강의 물결을 운율로, 추운 겨울밤에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장작불이 춤추는 모습을 노래의 불꽃으로, 막 피어오르는 새순의 재잘거림, 무르익은 열매에 늘어지는 포도 가지, 청명한 가을 하늘, 찌는 여름을 뚫고 날아온 시원한 바람의 속삭임을 작지만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시인이었다. 그는 딱 이런 친구였다. 여느 자리에서 그가 빠지면 서운한 모임이 되어버리는 그런 매력을 가진 사람 말이다. 결정적인 사실 하나! 그의 작품이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된 진짜 이유는 그가 돈에 지친 혹은 돈에 시달린 사람들의 친구였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돈을 비판하는 노래가 돈벌이가 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고 역설적이다. 여기에서 잠깐! 돈이 노래 가사로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시기가 바로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라는 점을 눈여겨볼 만한 사건이기에. 이쯤 되면,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로마의 일상과 세태를 비판한 호라티우스에 대해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요즈음 같으면, 불온한 내용이라 해서 검열에 걸리기에 딱 좋은 노랫말로 가득 찬 노래들의 지은이가 실은 바보-시인(poeta-stultus) 호라티우스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