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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원: 세네카에게도 글쓰기가 ‘치료제’였다(한겨레신문-20110819)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07.15 14:01 조회 1,055

문화

학술

세네카에게도 글쓰기가 ‘치료제’였다

등록 : 2011.08.19 17:56 수정 : 2011.11.01 15:15

 

[고전 오디세이] (38) 시인·철학자 세네카의 창조적 오역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ars longa, vita brevis)!” 히포크라테스의 말이다. 누가 옮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원문을 살피는 것이 순서겠다.
“인생은 짧고(Ho bios brakhys)/ 기술은 길며(he de tekhne makre)/ 기회는 순간이고(ho de kairos oxys,)/ 경험은 흔들리며(he de peira sphalere)/ 판단은 어렵다.(he de krisis khalepe.)”(<격언 모음> 제1부, 1번)
간결하지만 원문 자체가 애매하다. “인생은 짧고, 기술은 길다”도 정확한 번역은 아니다. 하지만 히포크라테스의 주장이 환자를 치료하면서 인간의 경험에 근거한 판단보다는 학문과 기술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말이라는 정도는 분명하다.
이를테면, 갑돌이의 감기를 치료하는 것은 갑순이라는 의사가 아니라, 그가 갑순이든 삼순이든 누구에게나 공통인 의술이라는 점의 강조가 이 주장의 핵심이기에. 그러니까 “기술은 길다”라는 말은 이론, 추상, 보편적 사유를 의미하는 언명이다.
이런 이유에서 “예술은 길다”는 오역이다. 또한 “인생은 짧다”도 오역이다. 이도 경험, 특수, 구체적 현상에 대한 인간 인식 조건의 불확실함을 지적하는 말이므로. 하지만 멋진 오역이다. 인생은 짧기에 말이다.
이런 멋진 오역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이 있다. 세네카다. 그의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De brevitate vitae)가 전거다. 책의 서문에서 그는 히포크라테스의 주장을 이렇게 인용한다.
현재 독일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소장중인 세네카의 흉상(서기 3세기 작품). 앞면은 세네카이고 뒷면은 소크라테스다. 이는 자연인 세네카와 철학자 세네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울리스여, 인생이 짧다는 이유로 자연이 너무 인색하다는 불만을 토로한다네. (중략) 극소수를 제외하면, 사실, 대다수는 인생을 준비하다가 인생을 마감한다네. 이런 이유에서 ‘인생이 짧다’는 소리는 무지몽매한 일반 대중들의 불평만은 아니네. 탁월한 이들의 마음도 불평으로 가득 차 있기에 말이네. 단적으로, 의사들이 가장 중요한 어른으로 모시는 이의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주장도 여기서 비롯되었으니까 말이네.”

인용은 히포크라테스의 주장이 세네카에 의해서 어떻게 오해(誤解)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금은 오해가 정해(正解)를 밀어내고 주인 행세를 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 오해는 양화를 밀어낸 악화와 같은 악해(惡解)는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히포크라테스의 주장이 몸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라면, 세네카의 주장도 치료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 치료는 특히 마음의 질병에 대한 것이다. 그 증인이 실은 세네카 자신이다.
세네카! 그는 철학자, 시인, 대부분의 로마 지식인이 그러했듯이, 정치가였고 교사였다. 네로 황제(54~68년)의 스승이 그였다. 하지만 정치적 삶은 순탄하지 못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41~54년) 시기에 8년 동안이나 코르시카 섬에서 유배되었기에.
하지만 유배지의 삶이 철학자 세네카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이 시기에 많은 저술을 할 수 있었기에. 대표적인 저술이 <분노에 대하여>, <여가에 관하여>,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다. 제목이 일러주듯이, 책들은 사람들의 마음의 질병 혹은 고통을 치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내용은 세네카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세네카에게는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글쓰기 자체가 치료제였다. 물론, 글쓰기가 분노나 슬픔과 같은 마음의 고통의 치료제가 된 것은 세네카에게서 처음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멀리는 플라톤, 가까이는 키케로를 들 수 있다. 사랑하는 딸 툴리아가 죽자, 키케로가 슬픔을 글쓰기로 달랜 사실은 유명하다. 이때 키케로가 쓴 책이 <위안에 대하여>(Consolatio)다. 보에티우스도 이런 종류의 책을 저술했다. <철학의 위안>(Consolatio Philosophiae)이다. 이 책도 소위 ‘위안-장르’(Genus Consolationis)에 속한다.
이쯤 되면 소위 인문-치료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임상적으로 증명된 적은 없지만, 글쓰기 자체가 마음의 고통에 대한 치료제 구실을 할 수 있기에 말이다. 적어도, 이런 종류의 글을 많이 쓴 키케로나 세네카에게는 위안과 치유의 효능을 발휘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효과는 글읽기에서도 가능하다고 한다. 특히 감정과 글읽기의 관계를 따지면서 주목해야 할 점은, 세네카가 <미친 헤라클레스>, <메데이야>와 같은 비극 작품을 10편이나 지은 시인이라는 사실이다. 세네카의 비극은 날카로운 심리 묘사와 섬뜩한 장면으로 가득 차 있고, 이런 이유로 세네카의 작품이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극과 프랑스의 고전주의 비극 및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세네카가 마음의 평정을 중시하는 철학자이고, 이를 위해 감정에 물들지 않으려는 노력을 많이 한 수도자였다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 노력을 로마인은 프라이메디타티오(praemeditatio)라 불렀다. 로마에서 공화정 말기에서 제정 초기에 유행했던 마음-공부의 일종으로 ‘명상’과 흡사하다. 따라서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수도자에 가까운 철학자 세네카가 선혈이 낭자한 장면들과 격렬한 감정들이 불꽃을 튀기며 싸우는 장면으로 가득 찬 비극 작품을 통해서 독자의 감정을 격하게 고양시킨다는 것이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찌 해명해야 할까?
한마디로 세네카의 비극 작품은 물론 르네상스 이후 많은 작가들이 해석한 방식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실은 정반대로도 읽을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왜냐하면 비록 자극적인 장면으로 넘쳐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독자의 감정을 격앙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평정(apatheia)을 찾도록 독자를 훈련시키는 교재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증거는 세네카 비극의 원문 문장 혹은 내용 구성 방식에서 발견된다.
얼핏 보면 사건의 진행은 나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감정의 흐름은 정작 뚝뚝 끊겨 있다. 오히려 독자의 감정이 사건 흐름과는 반대로 가도록 유도되어 있다.
격언(axiom)과 수사추론(enthymeme)이라 불리는 논증 방식 때문이다. 최근 연구를 보면, 독자들로 하여금 드라마에 몰입하고 감정을 이입하지 못하게 막는 장치로 세네카가 이런 논증 방식을 사용했다고 한다.
비극의 원문을 읽다 보면, 마치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현대의 보도사진전을 보는 듯한 인상을 받는 것도 실은 이 때문이다.
사정은 문단과 문단의 연결에서도 마찬가지다. 구성의 이런 특성 때문에, 세네카의 비극은 극장 상연용 드라마가 아닌 읽기용 레제드라마(Lesedrama)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시인 세네카와 철학자 세네카 사이의 모순은 아마도 이런 방식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세네카를 감정의 철학자로 부르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물론 서양철학사에서 감정 혹은 정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된 것은 근세다.
       
하지만 감정 논의의 바탕에는 세네카의 작품이 큰 구실을 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네카의 감정 논의가 실제로 마음의 통증을 치료하는 의약품 구실을 하는지는 의문이다. 적어도 세네카에게는 큰 효과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히포크라테스의 주장에 대한 세네카의 오해는 단순한 오해는 아니고, 창조적인 오해였음이 분명하다. 적어도 마음의 통증을 치유하는 일에 대한 모색이 실은 그 오해로부터 시작했기에 말이다.
 
 
안재원/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