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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 `불통의 황무지`에 씨앗 뿌린들…(디지털타임스-20130523)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07.15 16:17 조회 1,051

[디지털인문학] `불통의 황무지`에 씨앗 뿌린들…

 

입력: 2013-05-23 19:58
[2013년 05월 24일자 22면 기사]
 
[디지털인문학] `불통의 황무지`에 씨앗 뿌린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예수의 삶은 간결하고, 강렬했다. 이스라엘 작은 동네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자라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가르치며 지내다가, 반란의 죄목으로 잡혀 십자가에 매달리는 극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권력을 쥐고 있던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에 `돌직구'를 던진 것이 화근이었다.

하지만 역사는 그를 버리지 않았다. 그에 관한 기록은 어두운 세상을 비추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희망을 열어주는 `복된 메시지'로 존중되었다.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읽었고,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에 매료될 것이다. 그의 가르침의 생명력은 어디에서 샘솟는 것일까?

"예수는 비유로 말하였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일상의 이미지와 언어로 빗대어 알기 쉽게 삶의 비밀을 드러냈다는 뜻. 예를 들어, 사람들의 대화가 실패하는 이유와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을 드러내는 대목에서 그의 비유는 환히 빛난다. 어느 날, 예수가 집을 나서자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는 그들을 해변에 세워두고 배에 올라 비유로 말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밭에 나가 씨를 뿌렸소." 농부의 이야기다. 농업은 당시 가장 중요한 산업 가운데의 하나.대부분의 사람들은 밭에 나가 죽어라 일하고 품삯을 받아 연명해 나갔을 터.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로 소박하게 그림을 그려가며 말한 것이다.

"더러는 길가에 떨어졌는데,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소." 당시 이스라엘의 밭에는 둘레와 사이사이로 사람들과 짐승들이 내내 밟고 다녀 단단해진 길이 나 있었다. 그곳에 떨어진 씨는 뿌리를 내릴 수 없어 나뒹굴다가 새들의 먹이가 된 것.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졌는데, 흙이 깊지 않아서 싹이 나오다가 햇볕에 타서 말라죽었소." 팔레스타인의 경작지엔 토양이 깊지 않은 돌밭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던 모양이다.

그곳으로 떨어진 씨는 일단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긴 하지만, 바위에 막혀 더 깊이 내려가지 못하고 말라비틀어진 것.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졌는데,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소." 이번에는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건만, 아뿔싸, 곁에서 자란 가시덤불의 기운에 눌려 주눅이 들어버리고 끝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100배, 또는 60배, 또는 30배의 열매를 맺었소." 뿌리 단단히 박고, 아무 것도 거칠 것 없이 자란다면 풍성한 결실을 맺는 것은 당연한 말씀. 그래서요? 그게 무슨 뜻이지요? 제자들이 묻는다.

씨가 뿌려지는 땅은 우리의 마음이다. 오늘도 우리는 가슴에 `땅'을 품고 사람들을 만나며, 서로에게 언어와 생각의 `씨'를 뿌릴 것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좋은 땅으로서 상대의 생각과 말을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대화는 풍성한 결실을 맺는 소통의 계기가 될 것이다.

상대에 대한 믿음과 배려, 사랑으로 비옥한 밭이 되어 준다면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 밭은 `불통의 황무지'가 되기 일쑤다. 나를 찾아온 사람에게 더러는 강퍅한 길로 버티며, 그의 생각과 언어를 무시하며 튕겨낸다. 내 안에 들어와 뿌리를 내릴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더러는 얄팍한 돌밭이 된다.

겉으로는 웃으며 그의 `씨'를 받아들이지만, 그것은 잠시 그때 뿐. 내 마음의 깊은 곳엔 그것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고, 곧 까맣게 잊는다. 더러는 그의 `씨'를 받아들여 한동안 키워보지만, 내 마음 밭의 날카로운 욕망과 근심의 가시덤불이 끝내 결실을 막는다.

창조적인 대화를 위해서는 마음의 땅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밭이 좋아야 하듯, 서로에게 뿌리는 씨가 좋아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알토란 같이 다듬고 다듬어 낸 생각과 언어의 `씨'를 뿌리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는 자주 `천국'을 말했다. 아마도 그것은 죽은 뒤에나 갈 수 있는 허공 속의 공간만은 아닐 것이다.우리가 서로에게 좋은 `씨'를 뿌리고 비옥한 `밭'이 되어 줄 때, 우리의 만남이야말로 아름답고 기쁨이 넘치는 `천국'이지 않겠는가. 예수는 말한다. "귀 있는 사람은 들으시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