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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 `아름다운 나라`의 조건(디지털타임스-20130704)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07.15 16:18 조회 1,111

[디지털인문학] `아름다운 나라`의 조건

 

입력: 2013-07-04 19:59
[2013년 07월 05일자 22면 기사]
 
[디지털인문학] `아름다운 나라`의 조건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혼자 살 수 없어 국가를 만들었다. 국가라는 조직 안에 깃들어 사는 것이 혼자 사는 것보다는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서 사람들이 국가를 승인하고 국민이 되는 `계약'을 맺은 것이다. 그래서 국가는 국민을 외부의 침략과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주고, 국민들 사이의 다양한 분쟁을 조정하며, 국민들이 각자의 능력과 취향에 맞게 최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역할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국가다. 그래야 국민은 선뜻 자기 수입의 일부를 떼어내 국가에 세금을 내고, 한창때의 시간을 군대에 바치며, 국가가 정한 법을 불편하더라도 지키며, 자신의 이익을 양보하고 다양한 종류의 공적 의무를 기꺼이 수행할 수 있다. 계약에 따라 서로 주고받는 일종의 거래인 셈이다.

국가의 운영을 위해 국민은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일정 부분 포기하고, 그것을 일부의 사람들에게 맡긴다. 맡길 사람들을 선거를 통해 뽑고, 뽑힌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권력을 준다. 그들은 정부를 구성하고 사회 전체를 연결하여 국가의 살림을 꾸려나간다. 그래서 그들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지배자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하는 일꾼이다. 국민의 뜻을 헤아리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만 한다. 그래야 원래 취지에 맞다. 만약 그들이 국민의 뜻을 저버리고 자신과 자기네 집단의 이익을 위해 일을 한다면, 그들은 `국민을 대표하는 일꾼'일 수 없으며, `통치자'의 자격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다.

의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환자를 고치는 사람이며, 그 일에 최우선을 두는 사람이다. 그래야 의사다. 의사가 의사이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 만약 그가 환자의 치료말고 다른 것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면? 환자를 고쳐서 돈을 벌고 좋은 차를 타고 비싼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데에 더 큰 관심을 둔다면, 그를 `의사'라고 부를 수 있는가? 만약 그의 관심이 환자의 치유보다도 자신의 부를 키워나가는 데에 더 큰 관심이 있다면 그는 `의사'라기 보다는 의술을 팔아 돈을 버는 `장사꾼'이 아닌가?

플라톤은 `국가'라는 책에서 묻는다. `통치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통치를 받는 국민의 행복과 안전, 평화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사람이어야 진정 통치자가 아니냐고 묻는다. 만약 통치자가 국민이 허용한 권력을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고 자기 패거리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데에 이용한다면, 그는 `통치자'가 아니라 통치에 허용된 권력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장사꾼', 아니 공적인 권력을 사적인 흉기로 삼아 국민을 갈취하는 강도가 아니겠느냐고.

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나라'는 모든 국민에게 각자의 능력과 품성, 취향에 맞는 역할을 나눠주고, 그 역할을 다할 때 국민 모두가 행복하고 번영할 수 있는 나라다. 통치자가 통치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의사는 의사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행동하는 나라. 학자는 학자로서 학문에 전념하고, 사업가는 사업가로서, 군인은 군인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는 나라.

플라톤은 그런 나라를 `아름다운 나라(kalipolis)'라고 불렀다. 반대로 사람들이 이기적 욕망의 유혹에 이끌려 자기 본분을 잊는다면, 그래서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직분에 따르는 공적인 권리와 능력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 악용한다면, 그런 것은 나라가 아니다. 약한 사람들이 피할 곳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부당하게 핍박과 불이익을 당해야만 한다면, 그곳은 국가가 아니라 감옥, 아니 지옥이다.

그래서 묻는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진정 `아름다운 나라'인가? 아니면 아름다운 나라인척 하지만, 사실은 공적인 권력을 부여받은 사람들이 그것을 사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호시탐탐 악용하여 약자를 한없이 고통스럽게 만드는 지옥은 아닌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전 국정원장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나라의 모든 사람이 각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값을 제대로 하며 살고 있는가 물어야 한다. 이 물음에 떳떳할 때, 이 나라는 플라톤이 소망하던 `아름다운 나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