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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 `그 소크라테스`는 어디에 있나(디지털타임스-20131003)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07.15 16:19 조회 1,582

[디지털인문학] `그 소크라테스`는 어디에 있나

 

입력: 2013-10-03 19:55
[2013년 10월 04일자 22면 기사]
 
[디지털인문학] `그 소크라테스`는 어디에 있나
김헌 서울대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소크라테스는 오롯이 진리를 추구하던 철학자였다. 다른 욕심은 없었다.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도 않았고, 권력이나 명예를 추구하지도 않았다. 그에게 간절했던 건, `왜 사는지',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참된 깨달음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예수, 공자, 부처와 함께 4대 `성인(聖人)'으로 꼽는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정말로 존경할까? 혹시 현실 감각 없는 바보로 여기지는 않는가? 그가 살았던 방식대로 살다가, 그가 죽었던 것처럼 죽으라면 기꺼울까? (그는 오해와 모함에 휩싸여 사형을 당했기에 하는 말이다.)

솔직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뜬 구름' 잡는 소리 같은 철학, 그거 어디다 써먹나 싶다. 다 배부른 사람들이 후식처럼 폼 재면서 하는 `잉여 짓' 같다. 주린 배를 움켜쥐면서까지 `철학'을 하겠다고 한다면, 그건 정신 나간 일이 아닐까 싶다. 자고로 배우면 힘이 되어, 돈도 벌고 권력도 얻고 명성을 드높여야 하는 것. 소크라테스처럼 하는 철학은 무기력하고 무능해 보인다. 그의 아내 크산티페는 남편이며 가장인 소크라테스에게 그리 만족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진지한 철학자, 경건하고 도덕적인 시민, 맑은 영혼? 순진하면 똑똑하고 강한 놈에게 꼼짝없이 당하고 마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소크라테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그럼 이런 소크라테스는 어떤가? 그는 멋진 학교를 가지고 있다. 수업료만 내면 옳든 그르든 소송에서 이기는 말발을 가르쳐준다. 죄를 짓고도 아닌 것처럼, 큰 죄를 짓고도 사소한 착오인 것처럼, 고의로 나쁜 짓 저질러놓고도 의도하지 않은 실수인 것처럼, 책임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처럼 만드는 교묘한 언변의 연금술. 소크라테스는 바로 그것을 가르친다. 그는 정말로 `뜬 구름'을 신으로 섬긴다. 땀 흘려 일하지 않고 푹신한 소파에 앉아 머리만 굴려서, 땀내 흠뻑 젖은 돈을 긁어모을 수 있단다. `구름의 여신'께서 가르쳐 주신단다. 구름은 원하는 대로 자신의 모습을 바꾸며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니까. 제자들이 그런 소크라테스에게 구름처럼 몰려든다. 떼돈을 벌 것만 같다. 그런데 그런 소크라테스가 도대체 어디 있냐고?

기원전 423년 그리스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구름>이라는 작품에서 `그런 소크라테스'를 무대에 올렸다. 소크라테스는 기발한 착상과 교묘한 언어로 상대방의 생각을 맘껏 주무를 수 있는 최고의 연설가를 만드는 교사다. 그는 법망을 피해 이득을 챙기고, 죄를 짓고도 무죄를 입증하며, 부정의 책임을 피해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눈 감으면 코 배어가는 험악한 세상, 강자가 역사의 주인이 되고 정의의 주도권을 잡은 시대, 하얀 고양이가 아니라 검더라도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필요하다고 공공연히 요구하는 사회에서 딱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소크라테스. 그는 생존의 `센스쟁이'다. 진리, 정의, 사랑, 공공성? 그걸 가르치겠다는 건 학교가 세상을 몰라서 하는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런 소크라테스'가 우리의 대학으로 온다면 무엇을 가르칠까? 학생들에게 취업의 경쟁에서 승자가 되는 방법과, 실정법을 자신에게만 유리하게 해석하며 법망을 피해서 자기 이익을 챙기는 다양한 편법을 가르칠 것이다. 문제가 생길 때 자신을 최대한 변호하고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논변의 칼을 팔아먹을 것이다.그런 자신을 교육자의 모습으로 포장한 채로 말이다. 인간 실존의 참된 의미, 함께 사는 사회 속에서 품격 있는 시민으로 살아가는 윤리, 이런 고귀한 인문학적 가치는 모두 시장에 팔아버린 채로 말이다. `그런 소크라테스'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연극 속에서는 분노한 시민에게 쫓기고, 그의 학교는 불탄다. 그리고 얼마 후, `그런 소크라테스'가 판을 치던 아테네는 지난날의 번영을 잃고 몰락하였다. 인문학의 위기가 사회의 몰락을 부른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가 외면당하고, 아리스토파네스가 그린 그런 소크라테스로 지식인들이 변질되는 사회. 우린 그런 사회 속에서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몰락의 심각한 위기에 무감각한 것은 아닌가?

김헌 서울대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3100402012251607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