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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능우: ‘야꾸비얀 빌딩’과 이집트 민중봉기(한겨레신문-20110208)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07.15 17:08 조회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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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야꾸비얀 빌딩’과 이집트 민중봉기 / 김능우

등록 : 2011.02.08 18:58수정 : 2011.02.08 18:58         
 
김능우

김능우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아랍문학

아랍의 지성인들이라면 ‘독재가 만연한 아랍 나라에서 시민들의 고통에 찬 울음소리를 들으려면 소설을 읽어보라’는 말의 의미를 안다. 아랍에서는 검열과 언론통제가 심해, 아랍 작가들은 교묘히 소설을 통해 독재정권의 문제점을 암시하며 국민의 저항정신을 일깨운다는 말이다.
지난해 초부터 현재까지 이집트 작가 알라 알아스와니(1957~)의 소설 <야꾸비얀 빌딩>을 번역하던 중 올해 1월 튀니지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 독재자를 몰아냈다. 그 파장으로 이집트에서 반독재 시위가 폭발했다. 마침 <야꾸비얀 빌딩>을 읽으면서 마치 이 작품이 최근 이집트 민주화운동을 앞서 예언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이집트 카이로를 중심으로 정치적 부패, 사회 양극화 현상, 강대국에 의한 아랍 분열상, 청년 세대의 좌절, 종교의 폭력화 등 세계화와 독재체제에서 비롯된 이집트 사회의 문제점을 과감하게 건드렸다. 작가인 알라 알아스와니는 원래 치과의사로, 그는 썩은 치아를 치료하듯 이집트 사회를 썩게 만드는 원인을 찾아 그 치부를 드러낸다. 정경유착의 고리, 과거지향적 사고, 향락에 빠진 지식인, 생계 해결이 다급한 서민층, 이슬람 테러에 가담하는 청년 등 이집트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점을 작가는 예리한 시각으로 파헤친다.
<야꾸비얀 빌딩>은 이집트의 ‘일그러진 사회상’을 보여준다. 소수의 권력자들과 거부들은 더 가지려 들고, 대다수의 빈민층은 하루 먹을 빵을 구해 허덕이며, 일반 사람들은 서로를 속이며 일신상의 이익만을 꾀하려 든다. 가장 정직하고 경건해야 할 이슬람교계 원로들 중에는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힘있는 자’의 비위를 맞추려는 자,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테러를 조장하는 자가 있다. 정부는 권력 유지를 위해 강대국의 눈치를 볼 뿐, 삶의 희망을 잃은 국민을 위한 복지는 안중에도 없다. 이런 암울한 사회에서 빈민들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소설 속 인물 중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인물은 청년 ‘따하’와 애인 ‘부사이나’이다. 가난하지만 성실한 따하는 경찰장교가 되어 국가에 봉사하려는 꿈을 품었다가 빈민층에 대한 사회적 냉대로 인해 꿈을 잃는다. 정반대의 극단으로 치달아 결국 이슬람 과격단체에 가담한다. 국가의 무관심 속에 애국심이 증오심으로 변한 따하는 반국가적 테러리스트가 된다. 애인 부사이나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원치 않는 매춘을 하는 지경에 이른다. 두 젊은 연인이 이처럼 파멸에 이르게 된 원인에 대해 작가는 한 인물의 입을 통해 답한다. “이집트의 폐해는 독재정부야. 독재는 결국 가난과 부패 그리고 모든 분야의 실패로 끝나게 되어 있어.”
독재가 낳은 사회 구조의 모순으로 인해 인생 첫걸음조차 내딛지 못한 청년은 ‘불만’이라는 폭약을 재료로 만들어지는 ‘폭력’이라는 수류탄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 역사적으로 중동사회에서 영향력이 컸던 이슬람은 정치화의 길을 걸어왔다. 이란의 경우처럼 종교세력이 국가 최고 권력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 이집트 사회에서 청년층의 불만은 종교정치 세력으로 흡수될 여지가 있다. 절망감을 신의 보상으로 만회하겠다는 종교 신념을 갖고 세속정부 타도를 위한 테러활동에 온힘을 쏟는 소설 속 따하가 그 예이다.
지금 이 시각 카이로의 ‘마이단 타흐리르’(해방 광장)에 모여 독재정부 타도를 요구하는 시위 군중 속에는 따하와 부사이나를 포함해 하루 생계를 걱정하는 서민들이 많다. 이집트 민중혁명에 관한 언론 보도를 보면, 중동의 대국인 이집트의 사태가 유가 상승이나 무역 등 경제적으로 한국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내용이 많다. 다른 한편으로 이집트 상황을 통해 우리 내부의 문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국민들이 노력으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우리 청년들이 좌절하지 않고 각자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책 입안자들이 더 많이 고심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