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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 `평화의 여신` 누가 구할 것인가(디지털타임스-20140724)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07.28 17:11 조회 1,088
 

[디지털인문학] `평화의 여신` 누가 구할 것인가

 

입력: 2014-07-24 18:58
[2014년 07월 25일자 22면 기사]
 
[디지털인문학] `평화의 여신` 누가 구할 것인가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지난 7월 19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이스라엘의 전투기가 가자지구 북서부를 난타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고 삶의 터전을 빼앗긴 채 난민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미친 짓이다. 인간은 강도의 손에 칼을 쥐어주듯, 기술과 과학을 통해 사람을 죽이는 치명적인 무기를 발전시키고 양산하면서 자멸의 수순을 밟아가는 것 같다. 인간은 과연 지구에서 삶을 누릴 자격이 있는 생명체인가? 인간이 역사를 통해 남긴 흔적은 아픈 전쟁의 상흔과도 같다. 화려한 문명의 탑도 수많은 전쟁을 통해 약탈과 희생의 터전 위에 쌓아올린 허위며 위선 같다. 그 가면 뒤에서 섬뜩한 피비린내가 난다.

고대 이스라엘에 여호수아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모세의 후계자였다. 모세는 노예생활에 시달리던 이스라엘의 민족을 해방시켰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지는 못했다. 그 과업은 여호수아 장군의 몫이었다.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는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후계자로 등극하던 날, 용기를 불어넣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가 없을 것이다. 내가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 가나안을 얻게 하리라." 원주민과의 평화로운 공존이나 타협의 권고는 없었다. 신의 약속에 따라 여호수아는 가나안 원주민들을 척결해 나간다. 첫 표적이었던 여리고성을 함락한 이스라엘 전사들의 행적은 '학살'이었다. "그들은 남자와 여자, 젊은이와 노인을 죽였다. 그들은 소와 양, 나귀들을 죽였다. 성 전체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불태웠다." 그런데 가나안 정복의 약속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나 보다. 역사는 지금도 그곳에서 반복되고 있으니 말이다.

전쟁은 멈추지 않고, 학살은 끊임없이 자행되며, 평화는 오지 않는다. 왜일까? 그리스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신화적 상상력으로 해학적인 답을 내놓았다. 기원전 431년부터 404년까지 그리스에서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이 있었다. 두 도시를 중심으로 그리스 세계가 양분되어 벌인 대규모 전투였다. 투퀴디데스는 "이 전쟁이 과거의 어떤 전쟁보다 기록해둘 만한 큰 전쟁이 되리라고 믿고 기록하기 시작했다."며 역사를 써내려갔다. 전쟁의 규모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사상자가 많고, 민중의 고통이 막대하다는 뜻이다. 아리스토파네스는 10대 중반의 어린 나이 때부터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겪어야 했고, 평생을 전쟁 속에서 보내면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그의 작품 중에 <평화>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보여준다. <평화>는 기원전 421년에 양진영 사이에 니키아스 평화조약이 맺어져 잠시 찾아온 평화의 시기에 무대에 올려졌다.

극이 시작되면서 아테네의 농부 트뤼가이오스는 거대한 쇠똥구리를 타고 날아올라 신들의 궁전에 이른다. 제우스를 만나서 도대체 언제까지 전쟁에 시달려야 하며, 왜 아테네는 평화를 누릴 수 없는지 따지려는 것이다. 그런데 신들의 궁전도 사정이 녹녹치 않다. 신들 가운데 가장 포악한 '전쟁'이 다른 신들을 내쫓고 주인 노릇을 하며, 구멍을 깊게 파서 '평화'의 여신을 묻어두었기 때문이다. 트뤼가이오스는 '전쟁'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농부들을 모아 '평화'를 구한다. 그들 하나하나는 약하지만 힘을 합치니 거뜬히 해낼 수 있었다. '평화'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곁에는 '풍요'와 '축제'가 있었다. 트뤼가이오스는 그들을 데리고 땅으로 내려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노래한다. "여러분, 부디 행복하시오. 나를 따라오면 떡을 먹을 것이오."

하지만 아테네 시민들은 트뤼가이오스가 나눠주는 평화의 떡을 오래 먹지는 못했다. 전쟁이 평화를 다시 잡아갔는지,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곧 전쟁을 재개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전쟁은 세상 곳곳에서 날뛰며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도대체 언제쯤 평화의 여신은 풍요와 축제와 함께 다시 나타날 것인가? 누가 트뤼가이오스처럼 그들을 구할 것인가? 희극에 담긴 비극성을 곱십으며, 휴전선으로 분단된 한반도에서, 폐허로 변한 가자지역의 소식을 들으며 웃음기 없는 밤을 지새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