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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 `잘 묻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디지털타임스-20150326)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5.03.30 14:47 조회 902
[디지털인문학] `잘 묻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디지털인문학] `잘 묻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

입력: 2015-03-26 19:24
[2015년 03월 27일자 22면 기사]

 

대학 시절에 가장 인상적인 강의는 철학이었다. 어려서부터 떠오른 물음, '사는 게 뭐지?' 뭐 이런 물음에 답을 줄 것 같은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정반대를 들었다. 은사께서는 철학이 답하는 학문이 아니라 묻는 학문이라고 하셨다. <프로타고라스>라는 플라톤의 작품이 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 온 프로타고라스와 대화를 나눈다. 그는 소피스트의 거장을 당대의 '꽃미남' 알키비아데스보다도 훨씬 더 멋진 사람이라고 한다. 의아해하는 친구에게 빙긋 웃으며 말한다. "가장 지혜로운 것이 어떻게 더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항상 아무것도 모른다고 너스레를 떠는 소크라테스는 옳거니 하면서 프로타고라스를 물고 늘어진다. 묻고 또 묻는다. 귀찮을 법도 한데, 프로타고라스는 흐뭇하다. "소크라테스, 당신은 참 잘 물으시는군요. 나는 잘 묻는 사람들에게 답하는 것이 즐겁소." 잘 묻는 소크라테스는 앎을 갈망하는 희대의 철학자이며, 묻는 말에 답하기를 좋아하는 프로타고라스는 앎을 뽐낼 줄 아는 천하의 소피스트다.

나는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을 몇 단계로 나누어 보곤 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이들은 강의를 경청하고 잘 이해하는 똑똑한 학생들이다. 그들의 노트나 답안지는 내가 내 말을 정리하는 것보다도 더 가지런해서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이해력과 분석력, 암기력에서 탁월하다. 최근에 화제가 된 ‘S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라는 책의 주인공들이 이런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런데 나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그들 중 일부가 비틀어 묻는 질문에 쩔쩔맨다는 것이다. 배운 것을 새로운 문제에 응용하는 능력에서 어이없는 약점을 보인다. 왜 그럴까? 아마도 그들의 뇌가 새로운 정보를 이해하고 입력하는 데에만 있는 힘을 다 쏟아 붓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에 답을 내지 못하면, 그들의 풍부한 정보력은 빛을 잃는다. 학교 바깥의 사회는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배운 정보를 잘 이해하고 정확하게 외우고 있는가를 곱상하게 묻지 않는다.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민첩하고 영리하게 써먹을 줄 아는 유연성과 탄력성을 요구한다. 우리의 교육은 이런 능력을 키우는 데 허약한 구석이 있다. 특히 평가의 공정성이라는 덫에 걸려, 교과서 범위 안에서 분명한 답이 확인되는 문제만 담아내는 시험제도는 국가적 오류다.

이런 체제 속에서 학생들은 정보를 암기하는 것에 몰두한다. 답이 여럿일 수 있거나 독창적인 답을 내놔도 되는 문제는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성적에 불필요한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능력을 갈고 닦지 않아도 된다. 우수한 학생들의 무능력은 거기에서 피어오른다.

그런 무리들 가운데 눈에 확 띄는 학생들이 있다. '문제해결능력'을 넘어서는 비상한 탁월성을 보여준다. 잘 묻는 학생들이다. 잘 묻는다는 것은 무턱대고 많이 묻는 것이 아니다. 일단 배운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이런 저런 경우에 맞대어 본 다음에도 여전히 문제가 있음을 간파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물음은 앎의 호기심, 욕구, 갈망과 함께 강렬해지고, 배운 내용의 허점을 아프게 찌른다. 핵심의 허점을 돌파하고 새로운 답을 찾기에 최적화된 '문제구성능력'이 뛰어난 학생들. 그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고 혁신적인 체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도전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용기며 창조의 동력이다. 새로운 세계를 향한 잠재력이며 '인문정신'의 핵심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자유와 창의로 무장된 인문정신의 소유자를 품어낼 만큼의 수용력이 있는가? 색다른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는 역동적인 시스템이 있는가? 그럴 태도와 자세는? 정부나 기업의 시책을 잘 따르고 시키는 것을 군말 없이 해내는 수용적인 인간을 반기는 것은 아닌가? 인문정신이 아니라, 그저 인문학적 교양과 지식이 풍부한 얌전한 사람을 찾는 것 아닌가? 금기도 성역도 없이 본질을 겨냥해 잘 물었던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사회의 골칫거리였다. 사람들은 그를 대놓고 죽였다. 어느 시대나 인류는 '소크라테스' 때문에 불편하다. 그러나 명심하자. '소크라테스'의 물음 때문에 인류는 자정의 과정을 겪고 개선되며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한다는 것을. 소크라테스를 죽인 아테네는 얼마 후 몰락했다는 것을.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