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명과 아시아

[주해연구] [3] 『후스의 신문학론』(김수연)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4.08.04 13:31 조회 1,079
    3단계의 주해서로 구상하는 후스의 신문학론의 주된 텍스트는 50년간 중국문학(五十年來中國之文學)(1922. 3.)으로, 5.4신문학운동이 발발하기까지의 그간의 발자취에 대한 회고 성격이 강하다. 이는 당시의 문학개혁 논의와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 시각도 총괄적으로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러한 胡適의 텍스트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이유는 梁啓超, 魯迅과 함께 동시기 한국 문단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근대문학 초기 중국 신문학운동의 수용 양상을 검토하려면 비교적 이른 시점인 1920년대 초반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한국문단 역시 일본을 통한 서구문학을 활발히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웃 중국의 5.4신문학운동에도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관련 문장들을 번역 소개하였다. 예컨대 192011梁白華開闢5-8호에 靑木正兒胡適을 중심으로 한 中國 文學革命이란 일어문을 번역하여 게재한 것을 시작으로, 19228동아일보중국의 사상혁명과 문학혁명이란 소개글이 실리고 19235東明이란 잡지에 신시를 논함(談新詩)건설적 문학혁명론(建設的文學革命論)이 번역되었으며 19238동아일보최근 50년간 중국문학이 상세히 소개되는가 하면 그 일부가 중국문학의 50년사란 제목으로 19411朝光이란 잡지에 번역되어 실리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19352조선일보중국의 문예부흥(中國文藝復興)이란 문장이 번역되는 등, 지속적으로 후스의 글들과 창작시들이 실렸다. 이 과정에서 수용자로서 한국문단의 청년작가들은 후스의 신문학 사상에 적극 동조하고 문학개혁 논의를 한국으로 전파하는데 일정 정도 기여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중국 신문학의 선구자인 후스와 그의 문학론은 빠르게 수용되면서 한국의 언문일치운동과 신문학 담론에 광범위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와 같은 중국의 신문학 수용이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과 발전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는 앞으로의 지속적인 연구 과제로 남겠지만, 어찌되었든 한중 근대문학의 교류사에서 胡適이 차지하는 역사적 위상을 감안할 때 胡適의 신문학 관련 글들은 3단계 한국적 인문학이란 시각에서 충분히 조명해볼 만한 타당성을 지닌 자료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