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지식의 최전선] 설득의 학문, 수사학의 세계(조선 비즈-20150812)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5.08.12 20:26 조회 1,693
    
[지식의 최전선] 설득의 학문, 수사학의 세계
 
학계의 최신 현장 소식을 전하는 ‘지식의 최전선’ 두 번째로 세계수사학사회 학술대회 참관기를 소개한다. 수사학(修辭學)이란 설득의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민주주의 시대, 만인이 연결돼 소통하는 디지털 시대에 중요성을 더해가는 분야다. 이번 학술 대회는 지난 7월 27일~8월 1일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 열렸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의 김헌 HK연구교수가 참관기와 함께 수사학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주]
제 20회 세계수사학사회 학술대회 대회의장 모습. 올해에는 전 세계에서 약 300여명의 학자들이 모여 수사학의 다양한 측면에 관해 논의했다. /김헌 교수 제공
◆“ IS가 주도하는 불순한 행사?”
세계수사학사회 학술대회(Biennial ISHR Conference)는 1977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해 올해로 20회째다. 격년제로 열린다. 올해 전체 주제는 “문화를 가로지르는 수사학(Rhetoric across Cultures)”이었다. 40여 개국에서 500여 편의 논문이 제출돼 이 중 300여 편이 엄선돼 프로그램을 채웠다.
한국학자들은 2005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제15회 대회부터 참가했다. 이번에는 10명이 참가했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의 연구교수 4명은 별도 분과도 구성했다.
“이 학술대회는 IS가 주도하는 불순한 모임인가요?”
현지 학술대회 포스터 앞에서 찍은 사진을 한국에 보냈더니, 한 교수가 이렇게 물었다. 행사의 영문 약자인 ISHR의 앞쪽 두 글자를 두고 던진 농담 섞인 질문이었다. 물론 여기서 ‘IS(International Society)’는 그 위험한 ‘IS(Islamic State)’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튀빙겐 학술대회장 앞.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들. 왼쪽부터 안재원, 김헌, 박배형, 서정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학회가 ‘불순한’ 모임으로 오해받을 여지는 여전하다. 약자 중의 ‘HR(the History of Rhetoric)’ 때문이다. 수사학(Rhetoric)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난 때부터 지금까지 오해와 편견의 대상이었다. 학문적인 의심과 경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금도 수사학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사람들은 말한다. “수사학은 위험하다. 멋있고 아름답게 말하지만, 그 결과는 심각하다. 그럴듯하고 감미로운 말로 최면을 걸듯 사람들의 지성을 마비시킨다. 마치 동화 속의 피리 부는 마법사가 쥐들을 절벽으로 이끌고 가듯, 어린 아이들을 마을에서 끌어내 낯선 곳으로 이끌어가듯, 듣는 사람들을 홀리게 만드는 언어의 마법, 그것이 수사학이다.”
정치인에게 필요한 자질 중 하나가 수사학이라는 말도 있다. 동의하기 힘든 내용을 반박하기 어려운 말에 담아 청산유수로 흘려 내보내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능력이야말로 정치의 조건이라고 한다. 그러나 말이 그럴듯하다고 내용이 참된 것은 아니다. 설득에 성공한 정치가가 항상 훌륭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도 아니다.
정치가에 대한 실망은 그가 말로 그려낸 미래가, 때가 되어도 실현되지 않고 속임수였음이 드러날 때, 그를 믿었던 사람들 마음속에 무너지듯 생기는 최악의 감정이다. 수사학이 무지하고 부도덕한 정치인의 손에 주어질 때 그 위험성은 가장 명확히 드러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심과 경계의 눈빛으로 수사학을 바라본다. 수사학이 삶과 학문, 정치와 같은 진지한 영역에서 제거되길 바란다. 수사적인 말은 그저 여흥거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학이나 영화 같은 가상의 공간에서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용도로만. ‘내 마음은 호수, 그대는 노 저어’와 같은 감미로운 시적 표현을 만들어내는 데에서, 문학적으로 멋을 부리는 표현의 기술쯤으로 수사학의 핵심을 찾으려고 한다.
수사학이 언어 유희의 공간에서 빠져나와 공동체의 삶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오려고 하면 거부감을 보인다. 치열하게 논쟁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심각한 학문의 공간으로 들어오는 것도 마땅치 않게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학을 논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수백 명의 학자가 모여든 것은 ‘불순한’ 모임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수사학을 학문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어 무엇에 쓴담? 또 누굴 홀려서 무슨 짓을 하려고?”
중세 학교에서 수사학을 강의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수사학에 대한 경계와 낙인
과연 그런가. ‘수사학’은 본래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난 ‘레토리케(rhētorikē)’를 옮긴 말이다. 그대로 옮긴다면 ‘연설가(rhētor)의 기술(-ikē)’이다. 아닌 게 아니라 수사학은 의회나 법정에서 청중을 설득하는 기술이었다.
아테네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민주주의를 실험한 곳이었다. 자유시민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정치 체제. 그곳에서 일반 시민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법정이나 의회에 나가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상대를 공격했다. 공론의 장에 모여 자기 생각을 주장하고 논쟁하고 타협하면서 공공의 의견을 만들어나갔다.
이런 곳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말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자신의 의견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연설의 달인, 설득의 명수, 그들의 기술을 수사학이라고 했다. 그것은 잘만 사용하면 유용하고 건전한 것이었다.
하지만 자칫 그것을 나쁜 맘을 갖고 악용할 경우에는 도시를 위험한 길로 들어서게 할 수도 있었고, 좋은 맘을 갖더라도 무식하다면 본의 아니게 사람들을 위험한 상황에 빠뜨릴 수도 있었다. 그때가 그리스 문화의 황금기요 고전기라 불리는 기원전 5~4세기였다.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그런 수사학을 공격했다. 진지한 설득의 기술이 아니라 말로써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위험한 장난이라고 비난했다. 수사학을 가르치며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는 소피스트들을 비판하며 공격했고, 대중 선동을 일삼는 정치연설가들에 대해서 극도의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았다.
말하는 사람에겐 두 가지가 필요하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정확한 지식, 그리고 이기적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도덕성. 무지와 부도덕성이 만날 때, 수사학은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플라톤은 외친다. “말하는 자여, 그대가 말하는 것에 대한 진리를 알고 있는가? 진리를 알면서도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진실을 호도하며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닌가?”
참된 인식과 도덕성,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출 때만 수사학은 비로소 사람들의 영혼을 참된 길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 그렇지 않다면 수사학은 사람들을 거짓과 파멸의 길로 몰고 갈 것이라 했다. 문제는 그런 이상적인 수사학은 이 땅에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왼쪽부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와 이소크라테스의 변론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보다는 긍정적으로 수사학을 바라봤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몸이 아니라 영혼으로 살아가는 존재며, 영혼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이성, 그리고 그것에서 비롯되는 말(logos)의 사용이다. 말을 잘해야 인간 노릇도 제대로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부당한 폭력에 맞서 몸으로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말로써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훨씬 더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말을 잘 해야 하며, 진리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수사학은 가장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철학적으로 정제된 수사학을 체계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노력은 플라톤의 수사학 비판에 대한 철학적 반발이었다. 그것은 동시에 플라톤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이소크라테스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기도 했다. 이소크라테스는 누구인가? 그는 소크라테스만큼이나 영향력이 있었고 당대에는 플라톤보다 더 유명한 지식인이며 교육자였다. 기원전 4세기 초반에 플라톤보다도 먼저 학교를 세우고 ‘철학’을 가르쳤다.
철학은 ‘필로소피아(philosophia)’를 옮긴 말이다. ‘지혜(sophia)를 사랑하기(philo-)’라는 뜻이다. 철학을 정의하고 교육하는 방식을 놓고 플라톤과 이소크라테스는 서로 대립했다. 플라톤은 감각적이고 변화무쌍한 이 세상 너머에 영원하고 불변하는 진짜가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데아(Idea)이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지식(epistēmē)이 참된 지혜며, 그것을 사모하고 열렬히 추구하는 노력이 바로 철학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소크라테스는 이데아 같은 것은 없으며, 그런 걸 추구하는 것은 신기루를 찾아 헤매는 것과 같이 쓸데없는 짓이라고 일갈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철학이 아니라고? 그렇다면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이 추구하는 지혜란 무엇인가?
이소크라테스는 한결 인간적이었다. 인간은 부족한 존재다.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진리를 알 수 있을까? 그것이 그의 의문이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만의 의견(doxa)을 가질 뿐이지 않은가? 따라서 지혜란 진리를 깨닫는 능력이 아니라, 상황에 잘 맞는 시의적절한 의견을 구성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소통 능력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지혜라고 생각했다. 그런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철학이 아닐까? 이소크라테스는 그런 지혜를 추구하는 철학자를 ‘수사적 인간(rhētorikos)’이라 불렀다.
플라톤이 이소크라테스와 대립했던 것과는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소크라테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플라톤과 이소크라테스의 의견을 비판적으로 통합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이로써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 수사학 최초의 이론가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사학에 대한 까칠한 비판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서구 지성사 내내 수사학에 대한 비판의 칼을 갈았던 플라톤의 후예들은 끊이지 않았다.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수사학을 정당화하며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려는 노력 또한 열렬하다. 그 열렬함이 세계수사학사회(ISHR)로 구현된 것이다.
◆세계수사학회의 중심 튀빙겐
이번 개최지인 튀빙겐은 세계수사학사회 학회가 열리기에 적합한 도시다. 1477년에 설립된 튀빙겐 대학은 1496년부터 수사학과 시학을 담당하는 학과장을 선임했고 일반수사학을 위한 세미나가 열렸다. 내년이면 세미나 탄생 520주년을 맞는다. 1967년에는 세계 최초로 ‘수사학과’가 독립된 단일 학과로 세워지기도 했다.
튀빙겐 네카르 강변의 아름다운 풍경. 휠더린의 성을 비롯해 수많은 학자들의 사연이 알알이 박혀 있다.
튀빙겐 대학의 수사학과와 수사학연구소는 세계 수사학의 흐름을 비판적으로 반성하며 미래를 전망하고 주도한다는 자부심에 차 있다. 이번 전체 주제를 “문화를 가로지르는 수사학(Rhetoric across Cultures)”이라고 잡은 것도 그와 같은 자부심을 표현한 것이다. 그들은 이번 학회를 서구 중심의 수사학에서 벗어나 보편 또는 일반 수사학을 지향하기 위해 외연을 확장하는 계기로 삼으려고 한다.
대회를 주최한 만프레드 크라우스 세계수사학사회 회장은 “이번 대회에서 아랍권과 비잔틴, 아시아, 유럽, 북미 학자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공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며 “학문후속세대와 기성학자들 사이에 도발적인 질문과 원숙한 대답이 오가는 광경에서 수사학의 밝은 미래를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회 내내 전체 주제를 두고 날선 질문들이 날아들었다. 로마에 있는 ‘성서와 샘족어 수사학 연구소’ 소장인 롤랑 메이네(Roland Meynet) 신부는 그리스 로마에서 체계화되고 유럽으로 전승된 서구 전통의 수사학이 전 세계 각 문화권의 수사학을 설명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문명연구사업단 후원으로 열린 라운드 테이블에 한국 대표(아시아 대표 격) 안재원 교수도 이 점을 지적하면서 세계수사학사회의 미래 비전을 새롭게 제시하려고 했다.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수사학이라는 개념과 이론이 서구적인 기원과 역사를 두고 있는 터에, 모든 문명권에 두루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수사학은 어떻게 구상할 수 있을까? 결국 “문화를 가로지르는 수사학”이라는 주제 아래 다양한 문명권의 개별 수사학들이 병렬하는 것에 그치고 마는 것일까? 물음은 남는다.
이번 대회에서는 서구의 전통적 수사학 이외에도 아직은 소수지만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랍, 인도, 중국의 수사학이 소개됐다. 한국수사학회 회장인 이재원 교수는 신형욱 교수(한국외대 독문학)와 함께 한국 고유의 수사학 전통을 소개했다. 나민구 교수(한국외대 중문학)는 “치유의 언어와 수사학”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수사학의 특징을 ‘치유’라는 키워드로 풀어내는 발표를 했다.
수사학은 곧 설득의 기술이라고 규정하는 서양인들의 눈에 설득 대신 치유라는 말을 내세워 수사학과 연결시키려는 노력에 대해 한국수사학 분과에 참석한 외국 학자들은 신선한 접근이라며 호기심을 보였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후원으로 열린 전체 라운드테이블 회의. 한국 대표로 안재원 교수(앉은 사람 중 맨 왼쪽)가 참석했다.
◆“한국 고유의 수사학 더 알고 싶어”
한국 분과에 참석한 텍사스 오스틴 주립대학의 가가린(Michael Gagarin) 명예교수는 이번 대회의 성과를 이렇게 평했다.
“아주 다양한 학자들이 함께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과 일본, 중국을 포함해 여러 지역에서 온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이들의 발표를 듣고 또 사석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서구에서 수사학은 자기 의견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삼는다. 이것은 권위에 대한 무례함과 적대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남의 의견을 경청하고 발언의 자유를 지키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그리스에는 군주제 같은 고도의 권위주의적 정치구조와 위압적인 종교적 텍스트가 없었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반면 정치적 권위와 조상에 대한 존경심이 훨씬 더 컸던 동양에서는 연설가의 기술로서 ‘수사학’이 서구처럼 뚜렷하지도 높이 평가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나는 동양의 수사학에 대해 충분히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한국 학자들이 계속해서 이 학술대회에 참석했으면 한다.
서양인들은 ‘동양 수사학’하면 중국만 떠올리는데, 오늘 발표를 들어보니 한국의 고유한 수사학이 있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다양한 교류를 통해 더 많이 배우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국제 무대에서 영어 소통은 숙제
문제는 학술 교류가 대개 영어로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말을 잘 하는 기술로서의 수사학을 영어로 논해야 하는 한국인과 동양인의 어려움은 작지 않다. 우리는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서양학자들과 토론하고 논쟁해야 한다. 몸에 잘 맞지 않는 무장을 한 채 골리앗과 싸워야 하는 심정이랄까?
독일인 출신으로 나고야의 슈쿄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미히(Alexander Imig) 교수는 영어로 토론하는 한 레토릭(Rhetoric) 개념은 유럽 중심주의가 되며, 여기에 해당하는 ‘수사학(修辭學)’은 한자어 자체의 의미를 잃게 되므로 논의 자체가 어렵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영어로 진행되는 국제학회에서 소통과 논쟁의 경쟁력을 가지고 서양 중심 학문체계를 비판하고 정말 보편적인 수사학을 구상하거나 비서구 수사학의 위상을 제대로 소개하고 정립하려면 지난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제16대 회장이었던 프랑스의 페르노 교수. 한국의 수사학에 대한 깊은 관심과 함께 한국학자들의 적극적인 학회 활동을 독려했다.
2007년 스트라스부르 대회를 개최했던 프랑스의 로랑 페르노 교수(Laurent Pernot)는 ISHR가 서구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위한 제안을 했다.
“유럽과 북미가 ISHR의 창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지금도 여전히 회원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ISHR은 다섯 개 대륙의 모든 대표자들에게 열려 있다. 한국은 특별히 ISHR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을 하니, 말하는 기술(또한 쓰는 기술)에 대한 서로 다른 개념을 두고 대화를 해야 하는데, 대화를 위한 장을 마련하는 것이 ISHR의 임무이다.”
수사학의 넓은 뜻은 ‘말을 잘하는 기술’이다. 말 잘하는 기술은 말하는 상황과 조건, 관계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정의될 것이다. 그리스의 그것과 종교적 권위가 서슬 퍼랬던 중세의 그것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다른 방식으로 체계화하고 발전되었음에 분명하다.
동양, 중국, 한국에서도 각각에 잘 맞는 말의 기술, 언어의 테크닉이 있었다. 페르노 교수의 해석에 따르면 한국 수사학은 한국에서 통하는 ‘말 잘하는 기술’의 체계와 역사를 다루는 학문이어야 한다. 그것의 고유한 체계와 구성, 방법과 의미를 잘 정리해서 논의의 마당에 내놓는다면 그것이 세계수사학사에 기여하는 길이 될 것이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수사학을 기치로 내건 학술대회에 덧씌워진 ‘불순함’의 혐의를 걷어내기 위해서. 수사학의 ‘불순함’은 사실 플라톤이 찍어 놓은 낙인 같은 것이다. 그것은 ‘수사학이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사실에서 ‘수사학은 악용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비약한 것은 아닌가? 안재원 교수는 라운드 테이블에서 “이제는 플라톤의 자비를 구하는 방식으로 수사학을 연구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한국 수사학 분과 토론이 끝난 후 가가린 교수와 함께 한 한국학자들. 설득이 중심인 서구 수사학과는 다른 차원의 수사학이 가능하다 시각이 참신하다는 평을 받았다.
◆디지털 시대 말/글의 중요성은 여전
수사학은 말의 기술이다. 인간이 말을 하는 순간, 수사학은 작동한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 어떻게 내 생각을 잘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제대로 소통할 것인가? 이것이 수사학의 근본 질문이다. 이것이 수사학 연구자만의 물음일 수는 없다. 타인과 더불어 살며 말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딪히는 고민이다.
디지털 정보화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페르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정보의 디지털화는 기술적인 혁명을 이루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말하고 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말하고 쓰는 것은 기술 자체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인류학적인 활동이다. 나는 입을 열어 직접 말을 하지만, 마이크를 이용하기도 하고 영상 녹화를 하기도 한다. 그것 모두가 다 ‘말하기’다.
나는 모래 위에 손가락으로 글을 쓰기도 하고, 철필로 밀랍 서판 위에 쓰기도 하며, 자판을 두들겨 스크린 위에 쓰기도 한다. 그것 모두가 다 ‘쓰기’다. 분명 코드의 변화는 있다. SNS에서 말하고 쓰는 행위는 간략함을 추구한다. 그러나 소통의 근본적인 과정은 그대로다. 이런 이유에서 수사학도 그대로다.”
 
 
 
◆김헌
현재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서울대 불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론으로, 협동과정 서양고전학과에서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주제로 한 논문으로 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수사학’을 비교하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위대한 연설’ 등이 있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