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디지털인문학] `필로칼로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김헌(디지털다임즈 20160121)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6.05.13 10:07 조회 814
[디지털인문학] `필로칼로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김헌(디지털다임즈 20160121)
 
[디지털인문학] `필로칼로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HK교원)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의 기로에 서면 누구든 고민을 하게 마련, 그러나 선택의 기준이 바로 서 있는 사람은 고민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선택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 '나의 인생은 선택의 누적분'이라는 말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따르는 선택의 기준을 세 가지로 정리해줬다.

첫째는 경제의 원리, 실용의 기준이다. '어느 길로 가야 손해를 피하고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헤아리면 선택은 분명해진다. 계산을 잘못해서 결과에 후회할 수는 있을지언정 선택의 순간만큼은 주저함이 없다. '이익과 손해'의 기준은 탐리적인 본성의 인간에게 원초적인 것이지만, 특히 '이윤의 추구'를 지향하는 기업이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집단들이 최우선으로 삼는 기준이다. 일단 살고 봐야 한다는 절박함이 실리적인 외교나 실용적인 정책, 이윤추구의 마케팅 전략을 선택하게 만든다. 법을 어기더라도 법을 지켰을 때보다 이익이 더 많다는 계산이 나오면, 불법의 행태가 거침없이 저질러지는 것도 다 이런 까닭이다. "창고 안이 충실해야 예절을 안다"(倉庫實而知禮節)는 관자의 말이 그럴듯한 대목이다.

그러나 모두 자신의 이익만 추구한다면, '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homo homini lupus)가 되고 법과 의가 다 무시되며 사회는 맹렬한 생존투쟁과 이기적 욕망의 격전장이 되고 만다. 이런 우려에서 두 번째 선택의 기준이 강조된다. 법률의 원리, 정의의 기준이다. '어떤 행위가 정의롭고 합법적이며, 불법과 불의의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이 물음에서 첫 번째와는 다른 선택이 또렷해진다. "왕이시여, 이익을 따지는 말씀은 하지 마시고, 오직 인의(仁義)만을 말씀하십시오." 맹자의 조언이다. 그는 공자의 말에 기대고 있다.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에 밝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물론 반문이 있을 수 있다. 정의롭게 행동하다가 치명적인 손해를 입는다면? 하지만 걱정 마시라, "의(義)는 곧 이(利)"라는 묵자의 말처럼, 의를 위해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내놓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개인이나 사회, 국가를 위해 큰 이익이 되리라는 역설은 또 하나의 진리가 아니겠는가.

그 역설의 길을 선택하며 용감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이기적인 욕망에 허덕이며 사는 속인들의 어리석음을 높은 수준에서 일깨워주며 경탄을 자아낸다. 그들의 선택은 아름답다! 바로 여기에서 세 번째 기준이 부각된다. '아름다운 선택은 무엇인가. 부끄럽고 추한 모습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어느 쪽인가' 맵시를 자랑하는 멋쟁이들의 미학적 욕구에서부터, 이익을 위해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고결한 결단과, 부당한 압제에 항거하는 정의롭고 숭고한 행동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움은 우리를 감동시킨다. 이기심과 두려움에 짓눌려 진부하게 살 수 밖에 없는 범인들도, 비록 그들의 행동을 본받아 실천할 수는 없을지언정, 그 고결함과 숭고함에 깊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에 대해서도 이익의 잣대를 들이대며 조롱하고, 그 장렬함에 경의를 표할 수 없는 사람을 차마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며 그것은 그것대로 존중될 수 있는 선택의 기준이다. 도덕과 정의에 원칙에 따라 열심히 사는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보다는 군자답고 존경스럽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추구할 줄 아는 사람은 더 높은 경지에 있는 사람이다. 그리스의 황금기를 이끈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시민이 지혜를 사랑하며 아름다움을 사랑할 줄 알았던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역설했다. 플라톤에 따르면, 삶이 살만한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은 아름다움을 그 자체로 바라보면서 살 때이며 그런 사람이 참된 '철학자'(philosophos)란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 그리스 사람들은 그를 '필로칼로스'(philokalos)라 불렀다. 20년 동안 감옥 안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학자에게 그 이름을 줄 수 있으리라. 그의 명복을 빌며,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아름다움을 행동과 선택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역동하는 '아름다운 나라'(kallipolis)를 꿈꾼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HK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