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디지털인문학] 안전의 욕구와 ‘사회의 의무’-김헌(디지털타임즈 20160602)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6.08.10 09:09 조회 662
[디지털인문학] 안전의 욕구와 ‘사회의 의무’-김헌(디지털타임즈 20160602)
 
[디지털인문학] 안전의 욕구와 ‘사회의 의무’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


한 청년이 죽었다. 싱싱하게 꾸던 그의 푸른 꿈은 거대한 쇳덩어리에 무참하게 짓이겨졌다. 그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수많은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일했던 그였지만, 정작 그 자신은 안전을 위한 관리와 시스템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위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작업을 하다가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당한 것이다. 비극적인 역설이다.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누군가를 위험에 몰아넣고 죽게 만든 우리 사회는 도덕적으로 패악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나 살자고 다른 이를 죽인 꼴이니 말이다. 그가 식사를 할 시간조차 없이 죽음의 위험 속에서 홀로 일하게 만든 우리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어떤 사회든 구성원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위험을 감수한다. 전쟁의 위험에서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긴급 구조에 불철주야로 뛰어다니는 소방관 등 눈에 띄는 경우를 포함하여 사회 곳곳에서 험한 일을 감당하며 사회의 질서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성실하게 책임을 다하는 덕택에 다른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고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하려면, 그들의 책임감과 성실함은 필수적이다. 그들이 무책임하고 불성실하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사람들은 곳곳에서 위험에 노출될 것이며 사회 전체는 크고 작은 재앙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안전을 원한다. 안전의 욕구는 생리적인 욕구만큼이나 원초적이다.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원초적인 욕구를 뒤로 하고 위험을 감당하려는 사람에게는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우리는 감사와 존경의 마음으로 그들의 안전을 최대한 배려해야 한다. 그것이 함께 사는 공동체의 동료로서, 그들의 희생에 빚진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의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그런 예의에 충실한가. 우리는 암암리에 그 사람들의 위험한 노동을 헐값에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안전과 생존의 권리를 소홀히 하곤 한다. 그들이 묵묵히 그 일을 수행해 주기를 염치없이 기대하며 그들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번 구의역 사건에서 유명을 달리한 그는 우리의 집단적인 무례함에 의해 부당하게 죽임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사건이 보여준 우리 사회의 모순은 더 큰 재앙을 예고한다. 이 세상에는, 홉스가 말한 것처럼, 힘으로 다른 사람을 완전히 억누를 만큼 강한 사람은 없으며, 거꾸로 억울하게 해를 입힌 사람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없을 만큼 허약한 사람도 없다. 서로를 배려하고 아껴주지 않는다면 심각한 갈등이 빚어질 수 있고, 그 갈등은 우리 사회가 존속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적일 수 있다. 내가 안전하게 살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위험으로 몰아넣고 나 몰라라 해선 안 된다. 그것은 치명적인 모순이며, 결국 그 위험의 칼날은 나를 향할 것이다. 나의 안전과 편리를 위해 누군가를 절망하게 만들고 노엽게 한다면, 그도 언젠가는 나를 위험에 빠뜨리겠노라고 앙심을 품고 벼를 테니까. 사랑이 없는 사회는 분노로 폭발한다.

누가 이번 사건의 희생자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것은 일종의 살인사건이라는 인식에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직접적인 책임자를 찾아내어 엄중하게 다스리고 재발을 막을 수 있도록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과 함께 좀 더 총체적인 시각에서 이 문제에 내재한 우리 사회의 모순을 재고해야 한다. 그 청년을 죽인 것은 우리 모두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 환경과 조건에 대해 안전 불감증을 가졌던 직접적인 책임자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시스템에 대해 무관심한 우리 모두가 이번 '살인'에 가담한 잔혹한 공범자라는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 사회를 이대로 방치하는 한, 그 모순을 방관하는 한, 우리 각자가 우리의 삶의 터전 어디에선가에서 그처럼 잔혹하게 당하게 될 잠재적인 희생자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