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쿠오바디스와 행로난](4)-안재원(경향신문(20160722)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6.08.10 09:19 조회 980

[쿠오바디스와 행로난](4) 약속과 맹세, 혼돈의 시대에 새로운 질서를 낳다

안재원 |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ㆍ인간 세상의 혼돈, 그 원인은?

제우스는 티탄신(거인들)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우주를 약속과 맹세 기반의 통치 체계로 바꾼다. 그림은 줄리오 로마노(1499~1546)의 프레스코 작품 ‘티탄(거인)들의 몰락’(1500년대, 이탈리아 팔라초 델 테).
제우스는 티탄신(거인들)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우주를 약속과 맹세 기반의 통치 체계로 바꾼다. 그림은 줄리오 로마노(1499~1546)의 프레스코 작품 ‘티탄(거인)들의 몰락’(1500년대, 이탈리아 팔라초 델 테).                

태초에 혼돈은 없었다. 혼돈이 있었다는 오해는 이렇게 생겨났다. 먼저 기원전 7~8세기에 활동한 그리스 서사시인 헤시오도스가 전하는 우주생성(cosmogony)에 대한 노래를 들어보자.
“처음 생겨난 것은 카오스였다. 다음으로 품이 넓은 가이아가 생겨났다. 눈 덮인 올림포스의 봉우리에서 거주하며 죽음을 모르는 모든 신들에게 언제나 안전한 거처였다. 타르타로스는 넓은 길의 가이아의 멀고 깊은 내부에 자리 잡았다.”(<신통기>, 116~119행>)
카오스는 ‘혼돈’으로 통용된다. 하지만, 헤시오도스는 혼돈의 의미로 카오스를 사용하지 않았다.

제우스 조각상. 그리스 국립고고학박물관
제우스 조각상. 그리스 국립고고학박물관

카오스를 혼돈의 의미로 널리 퍼트린 사람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기원전 43년~서기 17 또는 18)였다. “바다도 대지도 만물을 덮고 있는 하늘이 생겨나기 전의 자연은 전체가 한 덩어리였다. 한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카오스라 불렀다. 원래 그대로 투박하고 어떤 질서도 어떤 체계도 갖추지 못했던 무거운 덩어리로, 마찬가지로 그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으르렁대는 만물의 씨앗(원자)들이 한데 뒤엉켜 있었다.”(<변신 이야기>, 제1권 5~9행)

헤시오도스의 저작 <여인들의 계보>(2세기) 중 알타이아(Althaea)의 자손들을 전하는 파피루스 단편.
헤시오도스의 저작 <여인들의 계보>(2세기) 중 알타이아(Althaea)의 자손들을 전하는 파피루스 단편.

헤시오도스와 오비디우스의 노래 속에는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다. 무엇보다 오비디우스는 헤시오도스 노래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개념들인 ‘자연’, ‘질서’, ‘원자’들로 우주를 설명하고 있다. 헤시오도스에서 오비디우스로 이어지는 700여년 동안 많은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700년 동안에 도대체 무슨 일들이 일어났을까? 실제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정치적으로는 그리스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정체로 하는 폴리스가 형성되었고, 로마에서는 인민과 귀족들의 대타협의 산물인 로마 공화정이 발전했다. 지적으로는 엄밀한 학문이 신화나 전설과 같은 이야기와 노래들을 대체하였다. 어떤 이들은 말 너머의 자연 세계를 직접 탐구하고 관찰하였다. 어떤 이들은 인류가 아직도 해명하지 못하고 있는, 아주 오래된 물음들을 발견해냈다. 예컨대, “나는 누구인가?” 따위이다. 이런 물음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의와 논쟁을 아우르는 학문인 인문학이 그 꼴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기간이었다. 또한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함께 사는 방법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힘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던 때도 바로 이 시기였다. 이 글은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여러 고민 가운데에 하나인 맹세와 약속의 대한 이야기이다.

■약속, 새로운 권력구조의 근거
때는 바야흐로 청동기 문명에서 철기 문명으로의 이행기였다. 당시 세태는 이러했다. “이번에는 철의 종족이 태어났기 때문이오. (…)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들은 아버지에게 낯선 사람일 것이고, 손님은 주인에게, 친구는 친구에게 두려운 사람일 것이며, 형은 동생에게, 동생은 형에게 해로운 사람일 것이오. (…) 주먹이 곧 정의이고, 나라는 나라를 약탈할 것이오. 약속을 지키는 사람과 정의롭고 선량한 사람을 아무도 감사하지 않을 것이오. 사람들은 오히려 악행과 범죄에 능한 자를 존경할 것이오. 정의는 주먹 안에 있고 수치는 사라질 것이오. 사악한 자가 이 선량한 사람을 삿된 말로 모함하고, 거짓 맹세가 판을 칠 것이오.”(헤시오도스의 <일과 날>, 176~194행)
한마디로 아수라장이다. 우주사적인 혼돈이라는 말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문명사적인 혼돈이라 일컬을 만하다. 청동기 문명에서 철기 문명으로의 이행 과정에서 생겨난 사회 구조는 온갖 새로운 악습을 만들어 낸다. 헤시오도스는 철의 시대, 이 사회를 가족 관계와 국가 관계의 질서가 모두 무너진 사회로 기술한다. 전통적 덕목인 ‘수치’와 ‘정의’가 모두 대지를 떠난 세계, 사회라고 노래한다. 철의 시대를 이야기하자면, 문명사적으로 두 가지의 사회 변화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혈통 중심의 씨족 사회에서 익명성이 보장되는 도시 사회로의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인구 증가로 인해 생존이 약탈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제 구조로의 변화이다. 빼앗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약탈 경제구조로 사회 규모가 커져버린 것이다. 사실 이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바로 <일리아스>이고 <오디세이>이다. 두 노래는 전형적인 해적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세태에 대해 헤시오도스가 내린 처방은 무엇일까.
정의를 상실하고, 수치를 모르는 사회에 헤시오도스는 두 가지의 처방을 내놓았다. 하나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일(노동)하라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약속 문제에 집중한다. 사태의 핵심으로 바로 들어가자(in res medias!). 헤시오도스가 처방으로 내놓은 약속과 맹세, 약속은 남과 관계를 맺는 사회적인 방식인데 계약 사회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반면에 맹세는 우주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맹세가 약속보다 더 높은 심급에 위치한다. 헤시오도스가 맹세를 약속보다 중시하는 이유는 우주의 질서가 맹세 관계에 기초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의 말이다. “오케아노스의 딸 스튁스는 팔라스와 사랑을 나누어 궁전에서 권력욕, 복사뼈가 예쁜 승리, 권력, 완력이 빛나는 자식들로 낳았다. 이 힘들은 제우스 바로 옆에 머물며, 제우스가 앞장서는 곳이 아니면 앉지도 가지도 않았다. (…) 오케아노스의 불멸하는 따님인 스튁스가 그렇게 하도록 결정했기 때문이다. (…) 번개를 치는 올림포스의 주인은 모든 불사신들을 불러 모으고, 신들 가운데에 자기와 함께 티탄 신족에게 맞서 싸우는 자에게는 어느 누구도 특권을 박탈하지 않고 각자에게 이전에 누리던 명예를 그대로 누릴 것이라고 약속했다. (…) 불멸의 스튁스는 사랑하는 아버지의 조언을 듣고 자식들을 데리고 가장 먼저 올림포스로 올라갔다. 제우스는 그녀의 명예를 높여 주고 특별한 선물을 주었다. 스튁스 자신이 신들의 위대한 맹세가 되게 하고, 스튁스의 자녀들을 언제나 자신과 함께 살도록 했다. 이렇게 제우스는 다른 신들에게 약속한 것들을 철저히 이행하였다. 반면에 그 자신은 권력과 왕권을 가졌다.”(<신통기>, 383~403행)
새로운 사회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약속, 약속을 지키겠다는 맹세 기반의 새로운 권력 구조가 만들어지는 장면이다. 세 가지를 보자. 먼저, 맹세의 신 스튁스가 제우스 권력의 핵심 근거로 자리 잡는다. 천둥과 번개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다. 그것들이 ‘권력의 상징’은 되겠지만 더 이상 ‘권력의 근거’는 아닌 것이다. 그들의 자리를 스튁스의 자식들, 바로 젤로스(Zelos·권력욕구), 니케(Nike·승리), 크라토스(Kratos·권력), 비에(Bie·완력)가 차지했다. 이들이 제일 먼저 올림포스에 올라간 것이다. 두 번째, 권력이든 완력이든 제우스 통치의 정당성을 맹세가 제공해준다는 점이다. 권력과 완력이 맹세의 자식들인 것이다. 권력의 비밀이 여기에서 드러나는 셈이다. 그 비밀은 바로 약속을 지키는 데 있다. 마지막으로, 제우스 통치체계의 특징이 드러난다. 제우스의 권력이 약속과 맹세를 통해 개별 신들에게 나누어진 명예와 특권을 보장하고,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제우스는 약속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하는데, 그 증인이 스튁스이다. 제우스는 맹세를 통해 권력과 왕권을 획득한다. 즉, 제우스 권력의 기반은 맹세이다. 제우스 자신과 개별 신들 사이에 맺어진 약속들과 신들과 신들 사이에 맺어진 약속들이 제대로 지켜지도록 돌보는 일이 제우스의 주요 업무이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우주 자체가 약속 체계로 이뤄졌고, 그 약속 체계를 아우르는 메타-약속이 맹세의 신 스튁스인 셈이다.

■약속과 맹세, 새로운 사회의 기반
그렇다면 스튁스는 과연 우주의 통치자 제우스의 권력 근거가 될 만한 존재일까?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먼저, 스튁스가 수행하는 역할, 다름 아닌 거짓 맹세를 하는 신들을 처벌하는 일에서 그 존재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누구든 거짓 맹세를 하며 스튁스 강물을 붓는 이는 일 년이 다 차도록 숨도 쉬지 못하고 누워있다. (…) 숨도 쉬지 못한다. 목소리를 낼 수도 없다. 깊은 혼수상태에 빠져 넓게 펼쳐진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한다. 긴 고통의 세월을 다 채우고 나면 또 다른 시련이 그를 덮친다. 9년 동안 그는 영생하는 신들로부터 격리된다. 회의와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 (…) 스튁스의 오래된 불멸의 물을 신들은 맹세의 증인으로 삼았던 것이다.”(<신통기>, 794~804행)
다음으로는 스튁스가 우주에서 차지하는 공간적·상징적 위치도 그렇다. “그곳에는 검은 대지와 안개로 덮인 타르타로스와 추수할 수 없는 바다와 별 많은 하늘의 원천들과 뿌리들이 순서대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은 고통스러운 곳으로 신들도 혐오하는 곳이다. 거대한 틈이다. 누군가 이곳의 문턱을 넘어서면, 한 해가 다 돌아도, 그 바닥에 도착하지 못한다. (…) 이곳은 죽음을 모르는 신들도 두려워하는 곳이다.”(<신통기>, 736~743행)
“그곳”은 지상과 지하와 바다와 하늘의 뿌리가 모여 있는 장소이다.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카스마(Chasma)라는 거대한 심연이다. 여기서 두 가지를 주목할 만한데, 거대한 “틈”으로 옮긴 카스마란 말이 카오스(Chaos)의 파생어란 점이다. 또 땅과 땅속 세계와 바다와 하늘의 뿌리들이 이곳에 순서대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주장이다.
카오스는 혼돈이 아니라, 우주를 담는 일종의 비어있는 그릇(vacuum)이다. 카오스에는 순서도 있다(hekseies)고 했으니, 그렇다면 태초에 혼돈은 없었다. 중요한 점은 지상과 지하와 바다와 하늘이 하나인 곳에, 즉 우주의 뿌리가 위치한 곳 바로 앞에 맹세의 신 스튁스가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맹세의 존재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우주와 나누는 대화이고 약속이 맹세이다.

■맹세 처방의 진짜 용도는?
헤시오도스의 맹세 처방은 제대로 약발이 먹혔을까? 요컨대, 약속과 맹세 기반의 우주 질서는 과연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을까? 적어도 신들 중에 거짓 맹세로 처벌을 받은 신이 있다는 소리를 아직까지는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맹세의 용도는 딴 데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다름 아닌, 인간 세계의 정의와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었다. “한편 가증스러운 경쟁(Eris)은 고통스러운 노고, 망각, 기아, 눈물을 쏟게 하는 통증, 전투, 전쟁, 살인, 도륙, 언쟁, 거짓말, 핑계, 반박, 무질서, 미망, -이들은 서로 친하다- 맹세를 낳았다. 누군가 알고도 거짓 맹세를 한다면, 이는 지상의 인간들에게 가장 큰 해악을 끼친다.”(<신통기>, 226~232행)
문명사적인 전환기를 맞이하여 겪게 되는 이른바 혼돈을, 더 명확하게는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 헤시오도스가 내린 진단과 처방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혼돈의 원인은 바로 ‘거짓’이었고, 이에 대한 처방은 ‘맹세’였다. 사실은 맹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제우스 중심의 우주가 공간 구성과 통치 체계를 하나로 연결시킨 힘이 바로 맹세이고, 그 힘 덕분에 우주는 거짓과 거짓 맹세를 허용할 수 없는 구조로 바로잡혔다. 2000여년 전 헤시오도스의 처방이 떠오르는 이 시대, 헤시오도스의 처방을 요즘 한국사회의 말로 하면 “너 자신에게 솔직하라”는 것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221905005&code=960205#csidxb80b3154d814782a4c9fc27880b0c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