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문명포럼조선일보 2009/11/4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0.07.14 11:36 조회 1,541
칠거지악(七去之惡)'은 기혼 여성 보호 장치?
조선전기 풍기문란 사건 빈번
"결혼제도·가정 지키기 위해 국가가 이혼 막는 정책 펼쳐"
정재훈 서울대 교수 이색 주장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조선전기에는 간통과 강간 같은 성(性)과 관련된 사건이 자주 등장한다. 금욕적인 성리학에 기초한 조선 사회에서 이런 풍기문란 사건이 자주 발생한 이유는 뭘까. 정재훈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는 "사건 자체가 늘었다기보다 국가가 성에 대한 윤리를 새로 기획하면서 새롭게 포착된 사건이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한다. 6일 서울대인문학연구원 HK문명연구사업단이 서울대미술관과 함께 개최하는 문명포럼 《성과 권력》에서 발표하는 〈조선전기에 포착된 성(性):윤리과 권력〉을 통해서다.
〈조선전기 유교 정치사상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정 교수는 조선전기의 성(性) 윤리가 요즘의 통념과는 다른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다. 우선 당시에는 미혼 남녀의 관계도 간통으로 취급했다. "조선왕조는 국가의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 그 기초단위가 되는 가정을 보호하고 안정시키기 위해 개인 간의 성적인 문제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이다. 조선왕조는 결혼제도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 가능한 한 이혼을 하지 못하도록 정책을 폈다. 여성 차별의 대명사처럼 거론되는 '칠거지악'(七去之惡)은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거나 정절을 잃은 경우 등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는, 이혼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칠거지악을 범했더라도 갈 곳이 없거나, 부모의 삼년상을 함께 치렀거나, 예전에 가난했다가 혼인한 후 부자가 된 경우 등 '삼불거(三不去)'에 해당되면 부인을 내칠 수가 없었다. 정 교수는 "칠거지악과 삼불거가 기혼여성의 권리를 보호하는 측면이 있었다"고 말한다.
 
조선전기 실록에는 장모나 처제 등 처가족과의 간통 사건이 많이 등장한다. 당시 남자가 결혼을 하면 처가살이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선은 당시 법률 모델로 삼았던 중국의 《대명률》(大明律)보다 처가족과의 간통을 무겁게 처벌해 참형에 처했다.
김기철 기자 kichu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