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쿠오바디스와 행로난](30) 맹목에 갇힌 정신-안재원(경향신문 20170217)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7.03.08 09:49 조회 62

[쿠오바디스와 행로난](30) 맹목에 갇힌 정신, 한 걸음 비스듬히 보아야 자유로워진다

안재원 |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ㆍ‘비스듬히 서기’의 또 다른 의미
미카엘 부르게르(Michael Burghers)가 1682년에 그린 루크레티우스의 초상.
미카엘 부르게르(Michael Burghers)가 1682년에 그린 루크레티우스의 초상.
“그건 공부라는 활동 자체가 기쁨의 원천이기에 비롯되는 즐거움이다. 사회가 나를 버겁게 해도 공부함으로써 기쁘게 되고, 시대가 나를 속여도 공부함으로써 기껍게 되는 즐거움이다. 그런 즐거움은 권력의 유무나 재력의 과다, 생로병사 등과 무관하다. 이런 즐거움을 ‘나’ 안에 갖추자는 제언이다. 그것이 비스듬히 서서도 지치지 않고서 버텨내며 살아냄의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김월회의 말, 경향신문 2016년 12월30일자 21면) 

비스듬히 서서 즐기자고 한다. 한가한 소리로 들릴 것이다. 요즘 돌아가는 시류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말이기에.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럴 수는 없겠지만, 비스듬하게 서서 즐기는 이가 몇 사람 정도는 있었으면 한다. 온종일은 아니어도 몇 분 혹은 몇 초 만이라도 비스듬히 서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바야흐로 ‘~빠’ 세력과 ‘~까’ 세력 사이의 오고 가는 말의 전쟁을 봐야 하는 선거 시즌이 돌아왔다. 지지하는 정치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맹목에 가까울 정도다. 한 걸음 비스듬히 서서 말과 사람, 말과 감정, 주장과 세력을 한 번쯤은 떼어 놓아 보자고. 물론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정신이 맹목의 상태에서 벗어날 때 가능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의 정신을 맹목의 동굴에 가두고 있는 힘들도 결코 만만치 않은 것들이기에 하는 말이다. 
요컨대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이 말했다는 4대 우상(종족, 동굴, 시장, 극장)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남이가”로 대표되는 지역감정, 정치인들을 향한 ‘팬덤(fandom)’ 현상,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인 물신주의, 질적인 성숙이 동반되지 않은 양적 성장주의, 그럴싸하게 포장된 이미지 등이 우리의 정신을 가두고 있는 맹목의 감옥을 구성하는 기둥들일 것이다. 어느 것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무튼 근대 국가의 형성(nation building)이 이렇게 어렵다. 생존에 필요한 물적 성장도 그렇지만, 생활을 누리는 데에 요청되는 정신적인 성숙은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그런데 정신이 맹목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이 계몽이다. 이와 관련해, 계몽으로 가는 길의 하나로 ‘비스듬히 서서 즐기자’는 김월회 선생의 제안은 두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편으로, 혼자 깨어나는 것이 계몽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럿이 함께 깨어나 있는 것이 계몽이니까. 다른 한편으로, 정치 세력 사이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 즉 정치권력의 이동도 계몽은 아니기 때문이다. 집단의 성숙을 목표로 하고, 그래서 계몽은 어느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고 오랜 기간에 걸친 축적의 시간과 경험을 전제로 요구하는 것이 계몽이다. “지치지 않고 버텨내며 살아”내자는 말에 십분 동의한다. 성숙의 나무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려면 어쨌든 기다림과 인내가 요청되기에. 비스듬히 서야 한다고 한다. 일리 있다. 이에 힘을 실어 줄 증인을 부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