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쿠오바디스와 행로난](34) 전쟁의 승패-안재원(경향신문 20170324)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7.03.28 11:06 조회 198

[쿠오바디스와 행로난](34) 전쟁의 승패, 용기보다는 인내와 규율이 더 결정적이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ㆍ‘팍스 로마나’를 만든 비결들에 대하여
군사적 리더십의 모범을 제시한 카이사르.
군사적 리더십의 모범을 제시한 카이사르.
“포세이돈은 부풀어오른 바다를 진정시키고 한 데 모인 구름을 흩어버리고 태양을 도로 데려온다. (…) 뾰족한 바위에서 배들을 끌어내린다. 포세이돈은 자신의 삼지창을 지렛대로 이용해서 이를 돕는다. (…) 부드럽고 가볍게 전차를 몰아 파도 위를 달리며 바다를 달랜다. 군중이 모이면 폭동이 일어나는 법이다. 민중의 마음이 사나워지면 어느새 횃불과 돌멩이가 날아다닌다. 광기가 무기를 들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때 우연히 마음이 경건하고 나라를 위해 큰일을 행한 사람을 보면, 그들은 다시 고요해진다. 그의 말을 듣고자 조용히 입을 닫고 자리를 잡는다. 그는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가슴을 달래어준다. 그처럼 포세이돈이 바다를 응시하자 바다의 폭동은 모두 가라앉았다.” (<아이네이스> 제1권 142~155행)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상황이다.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또 다른 전쟁이 로마를 덮쳤다. 내전이었다. 내전은 100여년에 걸쳐 지속되었다. 인용은 지긋지긋한 내전의 종결자가 나오기를 기원하는 베르길리우스(Vergilius, 기원전 70~19년)의 염원을 담은 것이다. 그 종결자는 누구였을까? 이에 대한 오비디우스(Ovidius, 기원전 43년~서기 18년)의 답이다. 
“불경한 무리들이 카이사르를 살해하고 그 피로 로마라는 이름을 지우려고 미쳐 날뛰었을 때, 인류는 갑작스러운 파멸에 직면해 거대한 공포에 짓눌려야 했고 세계는 두려움에 떨었소. 아우구스투스여! 제우스가 신하들의 충성을 보고 기뻐하듯이, 그대에게도 신하들의 충성이 기쁜 일이오.” (<변신이야기> 제1권 199~206행) 
종결자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 재위 기원전 27년~서기 14년)였다. 그의 신격화와 로마제국의 정당성과 관련해서는 여러 논의가 가능하다. 중요한 점은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등장으로 로마 사회를 짓눌렀던 오랜 내전은 종식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로마는 지중해 세계의 패권 국가로 거듭났다는 사실(史實)이다. 흔히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고 부른다. 이를 가능케 한 힘은 도대체 무엇일까? 시인의 말대로, 포세이돈과 같은 신적인 지도자 덕분이었을까? 답은 양가적이다.
■ 지도자의 능력 덕분이었다 
먼저 “예”에 대해 말하겠다. 국가의 통합과 화합에 지도자가 중요함은 굳이 부연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이에 힘을 줄 증인으로 키케로(Cicero, 기원전 106~43년)를 부르려고 한다. 그 증거로 키케로의 이상적인 정치가론을 제시하겠다. 지금도 재활용되고 있다. 서양의 정치가 양성 프로그램들이 키케로의 제안에 뿌리를 둔 것들이기에. 그의 이상적인 정치가는 이런 사람이다. 한마디로 말 잘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생각이 늘 깨어 있어야 하고 역사와 세계에 대한 예리한 통찰의 눈을 지녀야 하며 아울러 현실과 이상을 저울질할 줄 알아야 하고 말을 해야 할 때에 나설 수 있는 용기를 겸비해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 지도자에게 필수적인 다음의 조건들도 포함된다. 먼저, 특정 전문 지식이 아니라 모든 영역을 두루 꿰뚫어 보는 일반화 능력이 필수적이다. 어디에서 어떤 주제로 연설과 토론을 하든, 당면한 문제를 일반화하고 추상화해서 그것을 공동의 의제로 끌어올릴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잡학박식함이 아니다. 지식은 남의 혀로부터 빌릴 수 있지만 판단은 남의 머리를 빌려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혀에 저울(pondus verbi)이 달려 있어야 한다. 말 한마디에 ‘훅 가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기에. 결국 디테일에 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직과 공동체에 대한 사랑과 의무감이 중요하다. 정치에 참여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개인의 야망(ambitio)과 공동체에 유익함을 제공하려는 덕성(virtus)이 그것이다. 
그런데 키케로는 정치 활동을, 즉 공동의 일에 참여하는 것을 의무로 간주한다. 정치를 덕성이 아닌 의무로 규정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렇게 해명된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덕성으로 본 사람은 플라톤이었다. 그의 <국가> 6권에 나오는 이야기다. <국가> 6권은 동굴의 비유로 유명한 책인데, 거기에는 플라톤이 내세우는 이상적인 통치자라 할 수 있는 철인왕이 동굴에서 벗어나 빛의 장엄한 세계를 보고 난 뒤에 다시 동굴로 돌아가는 것을 주저하는 대목이 있다. 빛의 세계에서 어둡고 축축한 동굴로 돌아가는 것을 사실 좋아할 사람은 없다. 플라톤의 철인왕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빛의 세계가 당연히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정치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다른 이들과 나라에는 덕을 베푸는 것이다. 요컨대 이미 득도(得道)한 사람이 미망(迷妄)에 사로잡힌 대중에게 돌아가려는 마음을 먹는 것 자체가 이미 유덕하다는 칭찬을 들을 만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했는가? 소크라테스를 보라! 아테네 사람들에 의해서 사약을 받은 현자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란 눅눅한 감옥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플라톤 자신도 현실 정치에는 거리를 취한 사람이었다. 물론 그의 저술 행위 자체만으로도 역사와 문명에 가장 효력있는 정치였지만 말이다. 어쨌든, 플라톤 이후의 서양의 현자들이 정치에 취한 태도는 열이면 아홉이 현실 정치와 권력 암투를 멀리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에피쿠로스 학파의 현자들이 그랬다. 미망에 사로잡힌 동굴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죽음을 뜻하는 것이었기에. 가급적이면 현실 정치와 권력 암투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이 현자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에 대해 철학자들이 취했던 방관자의 태도에 대해서 키케로는 이렇게 비판한다.
인간은 각각에게 그리고 공동체에게 상호 의무를 진 사회적 존재라고. 이 점에서 플라톤이 현실 세계를 미망에 둘러싸인 감옥이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다. 그 동굴과 그 동굴에 사는 사람들에게 빚을 진 존재가 인간이기에. 그 빚을 갚아야 하기에 동굴로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내 안에는 무수한 ‘너’들이 있다는 소리다. 내 안에는 부모가 있고, 친구가 있고, 나라가 있고, 자연이 있기에. 그러니까, 내가 현재 여기에 서 있기 위해서는 부모의 사랑이, 친구의 우정이, 나라의 지켜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플라톤과 키케로 사이에 있는 차이가 오롯이 드러난다. 플라톤의 철인왕은 정치를 통해서 타인과 공동체에 덕을 베푸는 통치자이지만 키케로의 이상적인 연설가에게 정치는 세상에 진 빚을 갚아야 하는 의무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말하는 현실 세계라는 동굴은 키케로에게는 더 이상 감옥이 아니다. 그것은 반대로 나를 지켜주는 집이다. 그 집을 지키는 것은 따라서 의무이다.
그렇다면, 키케로가 제안한 이상적 정치가라는 교육은 과연 성공했을까? 물론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실패했다. 몰락해 가는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제안한 것이었지만, 로마 공화국이 몰락해버리고 말았으니까.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키케로가 노렸던 소기의 정치적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성공했다. 공화국은 사라졌지만 교육 프로그램 자체는 사라지지 않고 지도자 교육에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투스가 그 증인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가 그의 외손자 가운데 한 사람을 만나러 집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는 양손에 키케로의 책을 가지고 있었고, 깜짝 놀라 그것을 옷으로 감싸 숨겼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는 그것을 보고 달라고 했다. 그대로 서서 그 책의 많은 부분을 훑어보고 난 후, 다시 그 젊은이에게 돌려주면서 ‘참 연설을 잘하시는 분이었지. 이보게 젊은이, 그분은 참 연설을 잘하시는 분이었어. 그리고 조국을 사랑하시는 분이었다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플루타르코스 <데모스테네스와 키케로> 제69장) 

■ 조직의 힘 덕분이었다. 
<갈리아 전쟁기>의 시작 부분을 전하는 필사본. 파리국립도서관 소장
<갈리아 전쟁기>의 시작 부분을 전하는 필사본. 파리국립도서관 소장
이제 ‘아니다’에 대해 해명하겠다. 단적으로 팍스 로마나를 만든 것은 일반 병사의 힘이다. 이에 대해 카이사르(Iulius Caesar, 기원전 100~44년)의 병사 교육에 대한 생각을 보자. 참고로, 키케로가 엘리트 정치가의 교육에 방점을 찍었다면, 카이사르는 일반 병사의 훈육에 무게중심을 둔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갈리아 전쟁기>다. 알프스 이북의 유럽을 정복하면서 남긴 비망록 혹은 업적록에 해당하는 이 책에서 카이사르는 병사들에게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의 말이다.
“진지를 둘러싼 성채, 높은 산, 도시를 두르는 성벽들에도 사기가 꺾이지 않는 병사들의 용기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자신들이 장군보다 승리와 사태의 결과에 대해서 더 뛰어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방종과 오만함은 비난받아야 한다. 군대에서는 용기와 담대함이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절제와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갈리아 전쟁기> 제7권 52장 4절)
카이사르에 따르면, 전쟁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용기도 중요하지만 인내와 규율이 더 결정적이다. 용기는 개인의 힘에 불과하지만, 인내와 규율은 조직의 힘이기 때문에. 용맹함에 있어서는 갈리아인들이 로마인들보다 더 뛰어났다는 점을 카이사르도 인정한다. 그럼에도, 로마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잘 훈련된 조직의 힘 덕분이었다고 카이사르는 밝힌다. 다음은 카이사르가 전투에 나서는 병사들과 부관들에게 했던 경고다. 
“무엇보다도 병사들을 통제할 것을 지시했다. 전의에 불타올라서 혹은 전리품에 대한 욕심에 사로잡혀 너무 앞서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갈리아 전쟁기> 제7권 45장 8절)
전쟁터에서는 호승심에서 빚어진 개인의 일탈이 더 큰 위기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카이사르는 병사들에게 절제와 인내와 규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조직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로마인이 갈리아인을 이긴 원동력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카이사르가 조직의 규율을 따르는 힘을 ‘virtus’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virtus’를 뭐라 칭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키케로가 강조한 덕성(virtus) 개념과는 분명히 다른 생각이다. 개인의 능력을 최대화하는 것이 키케로의 덕성 개념이었다면, 카이사르의 그것은 개인의 능력을 최소화하는 것을 통해서 조직의 힘을 극대화하는 특성을 띠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키케로와 카이사르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겠다. 물론 이 둘의 차이가 논리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조직이 효율적으로 움직이려면 지도자의 능력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이사르가 조직의 극대화를 위해서 일반 병사의 교육을 중시했던 이유는 절제와 인내와 규율로 무장된 조직의 ‘virtus’가 팍스 로마나를 만든 결정적인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그 증인으로 역사가 리비우스(Livius, 기원전 64년~서기 17년)를 부르겠다. 그의 말이다. 
“야누스 신전의 문이 닫힌 후에 동맹과 협정을 통해서 주변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 놓았기에 외부의 위험을 망각하고, 적들에 대한 두려움과 군대의 규율로 유지했던 마음이 여가로 인해 방만하지 않도록, 누마(기원전 7세기) 왕은 무엇보다도 무지하고 그 시대에는 미개했던 민중에게 신들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용은 로마가 전형적인 상무국가였음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에서 서양 고대와 근대 사이에 있는 차이가 드러난다. 물론 국가의 화합을 이끎에 있어 지도자의 능력이 중요하고 아울러 조직원의 통제가 중요하다는 것은 공통적이다. 하지만 규율과 통제가 아닌 개별 시민의 자발성에 기초한 내적 성숙이 중요함을 알게 된 것은 사실 아주 후대였다. 프랑스혁명이 결정적이었다. 여러 말을 해야 하겠지만, 역사의 주체가 지도자가 아닌 개별 시민임을 자각하게 된 사건이 프랑스혁명이었기에.

■ 성숙으로 가는 길은 아직도 멀다  
폭풍과 파도를 평정하는 포세이돈의 모습. <아이네이스> 제1권 150행에 나오는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
폭풍과 파도를 평정하는 포세이돈의 모습. <아이네이스> 제1권 150행에 나오는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
문득 지난 100여일에 걸쳐 광화문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들에게는 포세이돈과 같은 신적인 지도자도 없었다. 키케로와 같은 정치가도 없었다. 카이사르와 같은 조직가도 없었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말한 절제와 인내와 자발적인 규율의 힘을 보여주었다. 키케로가 본다면 이를 뭐라 할까? 누가 뭐라 해도 우리 역사의 쾌거임에 틀림없다. 광장이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어 주었고, 거꾸로 우리의 성숙함이 광장에서 꽃을 피웠다 할 수 있기에. 그러나, 내 생각에, 이는 절반의 성공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또 다른 광장이 있기 때문이다. 매체의 발달 덕분에 광화문의 광장보다 더 일상적인 광장으로 자리 잡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간이 바로 그곳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배설되는 말들을 보노라면, 특히 요즘같은 선거 시기에 SNS 광장의 중심부를 먼저 차지하고 떠드는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듣다보면, “광기가 무기를 들게 만들”었다는 옛날 로마 광장이 바로 이곳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라서 하는 말이다. 성숙으로 가는 길은 아직도 멀다는 소리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3241927005&code=960205#csidx6c5a056c9c101f1b05b42328739cf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