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책과 삶]더 깊고 넓어진 문명의 이해 /경향신문 2011년 6월 10일자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1.06.30 15:28 조회 1,397
‘맹자사설’ 등 문명텍스트 총서 9권 첫 발간

‘문명’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이성과 의지로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간 과정인가, 아니면 세상을 자신들의 뜻대로 재편하기 위해 제국주의 침략을 미화한 서구의 야욕 섞인 개념인가. 문명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형성되고 전 세계로 이식되었으며, 그런 문명은 누구에게나 좋고 바랄 만한 것이었나.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문명연구사업단과 도서출판 한길사가 내놓은 ‘문명텍스트 총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이다. 2007년부터 모두 10년간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이 사업은 다양한 문명의 이해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총체적 모습을 그려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번에는 <맹자사설>(황종희 저·이혜경 주해) 등 문명텍스트 7권과 <문명 안으로>와 <문명 밖으로> 등 문명공동연구 2권이 1차분으로 먼저 출간됐다.

 
 
 
지난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김언호 한길사 사장(앞줄 오른쪽)과 송용준 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장(가운데), 참여 연구자들이 문명텍스트 총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7일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장 송용준 교수는 왜 문명 연구를 하느냐는 물음에 “문명을 주도적으로 형성해온 세력이 이에 반작용을 한 문명을 끌어들여 확대 재생산한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문명을 좀 더 가치 있게 만들어나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자질은 열린 정신과 반성적 사고를 바탕으로 창조적 가치를 산출해내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연구 성과는 크게 두 갈래로 집약된다. 우선은 한국·일본·중국 등 동양의 고전과, 서양의 고전, 몽골·아랍·아프리카 등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세계 여러 문명권의 고전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주해하는 사업이다. 대부분 우리말로 아직 소개되지 않은 이 고전들은, 당대 문화와 문명을 형성하는 데 뿌리가 되는 핵심 텍스트로서 지금까지도 지속적 생명력을 발휘하며 사유의 단서를 던지는 저작들이다.

<맹자사설>과 <자유의 법 강령>은 각각 중국 명·청 교체기와 영국 내전의 시기에 살았던 황종희와 제라드 윈스턴리가 시대의 질곡 속에서 어떤 새로운 가치를 발견했는지를 보여준다. 조선 성종의 어머니였던 소혜왕후가 쓴 <내훈>과 일본 헤이안 시대 한 이름 없는 여성이 쓴 <가게로 일기>, 주류 지리학에 내포된 남성중심성을 파헤친 질리언 로즈의 <페미니즘과 지리학>은 문명의 여성적 독해를 가능케 해준다.

몽골인들의 3대 문학으로 꼽히는 구전 영웅서사시 <장가르>는 몽골 고대문학의 정수로서 의미가 크며, 독일 신학자 헤르더의 <새로운 역사철학>은 헤겔과 마르크스를 거쳐 오늘날로 이어지는 독일의 역사철학적·역사주의적 사유전통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텍스트 번역과 병행되는 또 다른 연구 작업은 개별 연구를 묶어주는 큰 틀로서 보편성을 추구하는 문명공동연구 작업이다.

이번에 출간된 <문명 안으로>는 서양에서 만들어진 문명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식민지 정복과 제국주의 침략이라는 부정적인 행태로 옮겨갔으며, 이 개념이 한자문화권인 동아시아와 한국에 전파된 과정을 보여준다. <문명 밖으로>는 문명의 틀 바깥에서 문명을 거부했지만, 주류 문명에 비견되는 값진 유산을 남긴 ‘반문명’을 점검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그간 이러한 책을 만들려고 해도 연구자가 흔치 않아 할 수가 없었다”며 “책에 붙은 주석의 양을 봐도 번역이라기보다 새로운 저술 작업에 가까우며, 한국 인문학 수준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연구단은 2단계 3년, 3단계 4년에 걸쳐 이슬람 등장 이전 5~7세기 아랍인들의 시집인 <무알라카트> 등 100여권에 가까운 저작을 내놓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