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욕망의 분출구를 찾아라”(한겨레신문-20150317)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5.03.18 10:58 조회 1,487

“욕망의 분출구를 찾아라”

 
등록 : 2015.03.17 20:05 수정 : 2015.03.18 09:50
 
성해영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심층심리학자 성해영 교수 인터뷰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니체, 마르크스와 함께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철학자로 꼽힌다. 그는 인간 의식의 저변에 있는 방대한 무의식을 탐구해 심리학을 다른 차원으로 이끈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다.
프로이트처럼 무의식의 세계가 너무도 궁금해 안전한 배를 버리고, 무의식의 바다에 뛰어든 이가 있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성해영(47) 교수다. 1994년 행정고시에 수석 합격해 문화관광부 공무원으로 일하던 그는 6년 만에 사표를 던진다. 이어 미국 라이스대학에서 종교심리학과 신비주의 연구를 하고 모교로 돌아온 그가 이번에 프로이트의 말년 저서를 번역해 내놓았다. <문명 속의 불만>이다.
이 책은 ‘왜 인간들은 자신을 위해 발전시킨 문명이 모두를 행복하게 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별로 성공적인지 못한가’를 묻고 있다. 그 저작이 나온 뒤 80년이나 지난 지금, 우리의 욕망을 더욱 분출해 더 놀라운 문명의 발전을 이뤄 전설 속에 나오던 천안통 천이통이 가능할 만큼 편리해졌는데도 고통과 불행감을 호소하는 이가 적지 않다. 지난 13일 서울 안국동의 한 카페에서 성 교수가 이런 의문에 프로이트적 관점을 담아 답해주었다.
행정고시 수석한 공무원 때려치운뒤
미국서 심층심리학 공부
프로이트의 <문명 속의 불만> 번역
“욕구를 억압만 하면 왕따와 정신병에
전쟁으로 터져 나와
무의식의 본능과 욕망 해소 돕고
감성과 이성 균형 찾도록 도와야”
-왜 문명이 발전함에도 고통이 줄지 않는가?
“프로이트를 가장 큰 충격에 몰아넣은 게 1차 세계대전이었다. 발전된 과학문명이 인간을 살리기는커녕 죽이는 데 쓰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언제든 문명은 고통의 원인이 된다.”
-프로이트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어떻게 제시했나?
“프로이트는 고대 철학자 플라톤에게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플라톤은 영혼이 물질과 육체적 차원을 갈구하는 검은 말과 신성한 세계로 지향하는 흰 말, 그리고 두 마리 말이 끄는 마차를 모는 기수로 구성된다고 했다. 또 욕망이라는 두 말을 어떻게 길들이느냐가 인간의 행불행을 결정짓는다고 보았다. 결국 프로이트는 인간은 욕망의 존재이기에, 우리 정신의 구조를 잘 알아야 욕망을 적절히 관리할 수 있다고 했다.”
-욕망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나?
“프로이트는 인간 욕망이 에로스(사랑)와 타나토스(죽음)로 나뉜다고 보았다. 그는 우리가 이 욕망을 그저 충족시키는 게 아니라 승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권투를 보며 죽음의 본능을, 영화와 문학을 통해 육체적 본능을 더 세련된 형태로 승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통의 원인 중 하나가 스트레스다. 왜 스트레스가 발생하는가?
“욕망이 적절하게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3·1절과 8·15 광복절에 폭주족이 무법천지의 해방구를 만드는 것은 좌절된 욕망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사회가 젊은이들의 원초적인 욕망 해소에 실패하니, 그렇게라도 숨통을 틔우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욕망을 억압만 하면 더 큰 부작용이 생긴다. 청소년들의 집단 따돌림과 폭력은 본연의 욕망이 해소되지 못한 결과다. 연구에 따르면 중·고교생들에게 운동 시간을 늘려주었더니 그런 경향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욕망 충족의 좌절은 사회의 대부분이 겪는 문제다.”
-본능적 욕망을 방치하면 사고가 난무할 수도 있지 않은가?
“무분별한 충족이 아니라, 적절한 해소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지나친 억압은 정신질환과 같은 부작용을 만든다. 완고한 유교사회인 조선시대에도 현대판 러브호텔로 볼 수 있는 물레방앗간이 있었고, 억압받던 상민이나 노비들이 마당극이나 탈춤을 통해 욕을 퍼붓기도 했다. 이는 곧 사회적으로 용인된 욕망의 탈출구이다. 이런 지혜가 없으면 곤란한 일이 벌어진다. 일본인들은 평소에 감정과 욕망을 가장 잘 절제하지만, 일단 터지면 잔혹해진다. 성적인 풍속산업의 번성은 억압의 반증이다.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 등장한 훌리건이라는 폭력적인 축구팬, 철학이 번성한 독일에서 등장한 나치 등은 억압의 폭발이다.”
-우리나라에서 청소년들의 스트레스가 더욱더 심각한데, 어떻게 해야 하나?
kimyh@hani.co.kr
“프로이트는 성적 욕동인 리비도의 발현이 성장주기에 따라 구강기-항문기-남근기-잠복기-생식기로 변한다고 했다. 이와 비슷하게 힌두교는 인생을 배우는 시기에서부터 탁발 걸식의 수행 시기까지 모두 네 단계로 구분했다. 이처럼 인간의 욕망도 시기에 따라 발현 방식과 내용이 변한다. 성적 욕망은 청춘기에 가장 맹렬했다가 나이가 들면 줄어든다. 그런데 우리의 청소년들은 욕망의 발달단계와 전혀 맞지 않게 살아간다. 성적 에너지가 가장 활발한 청춘기에는 그 에너지를 억누른 채 공부만 하도록 강요받는다. 생식해야 할 시기를 학업과 취업하느라 보내버리고 만다. 그러나 취업도 하고 안정도 찾는 30대 후반이나 40대엔 이미 생식능력이 크게 떨어진다. 이는 출산율 저하로 이어져 국가적 위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북유럽에선 부모가 청소년인 자식에게 피임법을 알려주며, 원치 않는 임신은 막지만 성적 욕망의 적절한 해소를 돕지 않는가. 욕망의 발달단계와 성장주기로 보면 생식력이 왕성한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아이를 낳고, 그들보다 성숙해 아이를 훈육할 수 있는 40·50대인 조부모가 아이를 양육하고, 증조부모가 가족공동체를 이끌었던 옛날이 더 지혜로웠다고 할 수 있다.”
-종교는 주로 욕망을 버리거나 절제하게 한다.
“종교가 질서 유지 때문에 욕망을 과도하게 억압한다는 게 프로이트의 비판이었다. 사회질서 유지는 필요하지만 과도해선 곤란하다. 기독교국가에서 발생한 세계대전을 보라. 또 사랑을 강조하는 기독교가 유대인에게 죽음의 욕동을 투사하지 않았던가. 지나친 억압은 이처럼 문명을 오히려 위협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국가도 질서 유지를 위해 내부를 억압하지만 동시에 탈출구로 미워할 이웃을 만든다. 인접한 나라끼리 사이좋은 국가가 있던가.”
-욕구가 자유롭게 분출되는 현대에 종교의 역할은?
“현대는 ‘갑’만이 아니라 대다수인 ‘을’도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를 요구하는 최초의 시대가 됐다. 여자와 하층민 등 전통적인 사회적 약자도 그들의 욕구를 존중해주기를 원한다. 가령 법륜 스님과 혜민 스님과 같은 종교인들이 일반인의 아픔을 경청하면서 위로하는 일을 ‘값싼 것’으로 치부하는 일은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는 것이다. 일부 이슬람국가에선 여성은 위로는커녕 여전히 폭력에 시달린다. 생존과 안전의 욕구가 해소되면, 나를 존중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당연하다. 그 뒤에야 비로소 높은 차원의 자아실현이 가능해진다. 밥도 안 주면서, 밥을 먹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폭력이다. 그런 원초적인 욕망을 충분히 충족시켜주고 난 이후에 욕망의 고차원적인 승화를 이야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감성과 이성이 균형을 찾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한국인의 스트레스가 어느 나라보다 높고 기가 꺾인 이들도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인은 일본인과 달리 음주가무를 통해 억압된 감정을 그때그때 해소한다. 한도 많지만 이를 신명으로 승화시킨다. 이것이 붉은악마나 한류로 나타났다. 결국 욕구가 일방적으로 억압되거나 좌절되지 않고, 신명나게 해소되도록 해줘야 한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