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천둥을 속인 코요테 인간에게 불을 전하다(세계일보-20150103)

  • 글쓴이 최고관리자 날짜 2015.03.18 18:40 조회 1,811

천둥을 속인 코요테 인간에게 불을 전하다

 

원주민들 돌도 영혼 있다고 믿어
‘모두 나의 친척’이라며 존중 표해

 
 
리처드 어도스·알폰소 오르티스 편저/김주관 옮김/한길사/2만7000원
북아메리카 원주민 트릭스터 이야기/리처드 어도스·알폰소 오르티스 편저/김주관 옮김/한길사/2만7000원


인간이 불 없이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겨울 추위에 벌벌 떨고, 음식은 날것으로 먹어야 했다. 코요테는 불을 가진 천둥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주사위 놀이를 해서 자기가 이기면 불을 달라고 요구했다. 코요테는 승리했고, 불을 얻어 지구 위에 있는 모든 부족에게 전했다. 하지만 정당하지 못한 승리였다. 현존하는 것 중 가장 민첩한 코요테는 모든 종류의 놀이에서 상대를 속이는 달인이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에서 전해지는 신화의 한 토막이다. 불의 활용이 인류 문명사의 시작으로 간주되는 사건이고 보면 신화의 무게는 만만찮다. 코요테는 원주민 버전의 ‘프로메테우스’다. 이 이야기에서 인간에게 불을 전해주는 것이 신이나,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코요테가 불을 얻는 데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동원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서 전해지는 신화 모음집 성격의 책이다. 책에 실린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트릭스터(trickster)’다. 트릭스터는 신화 속에서 선과 악의 속성을 모두 가진 이중적인 캐릭터로 등장한다.

“인간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문화를 가능하게 한 문화 영웅”, “남을 속이는 교활한 인물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속아넘어가는 바보”가 트릭스터다. ‘타짜’의 솜씨로 천둥을 속이고 인간에게 불을 전한 코요테는 전형이다. 

‘트릭스터 이야기’는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만든 인격화된 동물을 중심으로 신화를 만들어 기독교, 유럽, 백인들과는 다른 세계관을 담아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트릭스터의 이중성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다. 코요테는 인류의 창조주로도 그려진다. 조그만 땅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물인 시절, 코요테는 거북이를 통해 바닷속의 흙 한 줌을 얻어 땅을 넓히고 “남자 여섯 명과 여자 여섯 명을 만들고 이들을 짝지어 간을 갈라지게 했다.” 또 다른 신화에 등장하는 거미인간 이크토미는 비슷한 방식으로 인간과 언어를 만들어 창조주의 반열에 오른다. 하지만 이들은 사악하고 옹졸하며 비겁하기도 하다.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호색한의 면모다.

‘코요테, 자기 딸과 자다’ 같은 신화에서 코요테는 죽음을 가장해 가족들의 눈을 속인 뒤 두 딸과 결혼한다. 이 외에도 온갖 종류의 민망한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한다.

트릭스터는 북아메리카 신화에만 등장하는 유형은 아니다. 호색한 트릭스터는 “엽색에 빠진 자, 간음한 자, 강간한 자, 유아성애자 등으로 묘사되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을” 연상하게 한다. 모든 문화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유형이기 때문에 신화 연구에서 집중적으로 연구된다. 북아메리카의 트릭스터가 독특한 것은 신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북아메리카 트릭스터의 또 다른 특징은 대개 동물이 인격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코요테, 거미뿐만 아니라 갈가마귀, 밍크, 토끼 등이 주요 인물이다. 이는 기독교, 유럽, 백인들의 세계와 대비되는 원주민만의 방식이다. 원주민들은 인간만이 영혼을 갖는다고 가르치는 기독교와는 다른 태도를 취한다. 돌, 나무, 호수 하나하나가 영혼이나 정신을 가진다고 믿으며 모든 자연을 존중한다. 가령 라코타 부족은 모든 의례를 “미타쿠예 오야신”이라는 말로 끝맺는다. “나의 모든 친척”이라는 뜻이다. 친척은 인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구상의 가장 작은 벌레에 이르기까지 살아 있는 모든 동식물을 포함한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사회가 만들어 낸 고분.
한길사 제공
낯선 지역의 신화를 의미까지 분석해가며 읽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어느 지역이 됐든 신화는 그 자체로 재미있다. 끝을 모르고 뻗어가는 신화 속 이야기는 인간 상상력의 완결판을 보여주는 듯하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신화 역시 예외는 아니다. 내용 중 상당 부분은 노골적인 성행위를 묘사하지만 흔히 말하는 포르노와는 다르다. “순박한 순진무구함이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을 감싸고 있다.”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들과 어린 아이들도 이러한 이야기를 즐긴다고 한다. 책은 “영웅적이거나 비극적이거나 익살스럽거나 색정적이기도 한 이야기들을 라코타 부족이나 호피족 또는 하이다족의 한 사람이 되어 받아들여라. 그리고 즐겨라!”라고 권한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